뚝틀이 2010. 8. 12. 22:28

이틀 전 갔던 곳. 그날 주룩주룩 내리는 비에 제대로 사진을 찍을 수 없었기에 오늘 다시 그곳으로.

세상에 이런 일이. 연못 주변에 군락을 이루고 있던 잠자리 난초, 그 모습 다시 기대하며 다가갔는데,

마치 어린이들이 뛰어놀기라도 한 듯, 그 습지는 완전 쑥대밭. 온전한 개체라 부를 수 있는 것은 하나도 없고... 온통 쓰러지고 밟히고....

분명 꽃 사진 찍으러 온 사람들 소행일 텐데, 사진을 찍는다고 이렇게 폐허가 되지는 않았을 텐데...

자세히 들여다보니,

이 예쁜 모델 주변 정리한다고 풀을 없애는 통에 이 녀석들 기댈 곳 없어 쓰러지고,

기울어 있는 모델 세운다고 건드려, 이 연약한 줄기 꺽이고....

눈에 선한 그 모습. 야생화 동호회라는 무리가 한 번 발 디디면 어떻게 되는지.....

 

꽃을 사랑하기에 꽃 사진을 찍는다고?

울분에 서글픔에 눈물이 줄줄.

나 역시 지금 이 습지를 또 연약한 풀들을 밟아 망가뜨리면서 누구를 원망하고 있는가. 그것보다 더한 위선이 있을까?

 

야생화 사랑이라는 듣기에는 그럴싸한 취미. 하지만, 진정 꽃을 사랑한다면?

심각한 고민. 이제 더 이상 얼마나 떳떳한 마음으로 사진을 찍을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