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그날 - o

성탄절 날

뚝틀이 2012. 12. 25. 18:48

어젯밤 내린 눈. 바닥에 쌓인 눈을 보면 확실히 화이트 크리스마스. 하지만, 낭만은 없다. 바람에 다시 날아오르는 모습에 朔風은...하는 唐詩가 연상될 정도로 황량한 모습이다. 잠깐씩 열린 문으로 들어오는 찬바람, 이건 거의 공포 수준이다.

 

아이들이 왔다. 예쁜 케이크 통 하나랑 과자 상자 앞세우고. 집안에 들어서자마자 이 녀석들 하나 둘 셋 맞춰 소리를 합한다. 메리크리스마스. 에이그 요 천사같이 맑은 녀석들. 난 화답한다. 해피버스데이. 어리둥절해하는 녀석들. 너희가 영어로 인사하니까 나도 영어로 대답했지. 근데, 사실, 이거 뭐 좀 잘못된 거 아닌가? 내 어렸을 적 그땐 새벽 동트기 전 이집 저집 문 앞에서 고~요한 밤 부르고, 사탕 몇 알씩 받고 그랬는데.... 하지만, 낭패, 어쩐다? 지금 집엔 아무 것도 없는데, 주스조차 없는데. 할 수 없지, 임기응변, 너희들 이 케이크 먹지 않을래? 솔직함이 무기, 지금은 그런 시대 아니던가. 다행히, 끄덕끄덕. 예쁜 등분 시도하며 열심히 칼질하는데 준혁이가 묻는다. “왜 거꾸로 들으셨어요?” “... ???” 무슨 말인가 했는데, 내 날 쪽을 잡고 손잡이 쪽으로 자르고 있었던 것. 이런~, 참~ 내~. 다들 맛있게 먹는데 선영이는 입도 안 댄다. 하도 배가 불러서란다. 유빈이 유진이는 안 보이네, 물으려다가 그냥 접어둔다. 오지 않은 아이에게 관심을 보이는 것이 좋을 리야 없지 않은가. 이번엔, 과자 상자 열어서, 각자 원하는 만큼씩 주머니에 채우기를 권한다. 미안한 마음에 조심스레 묻는다. 혹시 동화 들을 마음 있니? 표정들이 환해진다. 여기 아이들, '놀아줌'에 굶주린 아이들이다. '귀찮음'이 앞서는 도시아이들과는 다르다. 의자에 노트북을 올려놓으니 둥그렇게 둘러앉는다. 화면이 제대로 보이는지 확인 한 후 막스와 모리츠 그림을 넘겨가며 좀 과장한 분위기로 스토리 텔러 솜씨 한 번 발휘해본다.(거~, 참, 타이밍 참 한 번 절묘하다.) 이 녀석들 신나한다. 이렇게 통쾌한 골탕 먹이기, 이런 식 이야기를 언제 들어봤겠나. 하지만, 조금씩, 조금씩, 이건 좀 너무 심하지 않나 그런 생각이 드는지 표정이 굳어지더니, 마지막 끝 장면에 가서는 다들 놀랐는지 엄숙해진다. 그래도 내 걱정했던 그런 겁먹은 표정은 아니다. 오히려, 당연한 ‘논리적 결론’ 아닌가 하는 그런 반응. 다행이다. 역시 어른들 쓸데없는 걱정은 문자 그대로 杞憂다. 우리 아이들, 어떤 것도 다 소화해낼 수 있는 그런 크기 그릇이다.

 

저녁은 김치에 간고등어, 그리고 청국장. 아침은, 아니 새벽 참은 라면. 그럼 점심은? 아니, 11시10분전 그 끼니는? 냉장고 뒤지던 내 눈에 들어온 포기김치. 다듬기가 귀찮아 그냥 반을 쑥 썰어 접시에. 식사 후 개수대에 그릇 집어넣다 퍼뜩 놀란다. 어, 내가 김치 반포기를 한끼에? 세상에! 믿기지 않아, 냉장고 다시 열고 확인해보니, 그 통엔 반 포기가 들어있었고 내 그것을 반쪽 냈으니 사실은 1/4포기. 그러면 그렇지, 하다가 금방, 그래도 그렇지 쪽으로 바뀐다. 하루 세끼 완전 소금밭에서 놀기, 이건 확실히 정상이 아니다. 거기에 가끔 그 기름 지글지글 배어있는 치킨까지 말이다. 정신 차리기!!!!

 

손에 잡은 책, 반 조금 더 넘어가고 있다. 이젠 추리소설 그만 읽어야할까 보다. 재미? 벌써 결말이 눈에 보인다. 작가가 암시한다 느껴지는 그 쪽이 아니라, 이제 이러이러한 반전이 일어나겠지 그런 예상 말이다. 물론 내 예상이 틀어져야 재미있다. 하지만, 아직 그런 경우는 거의 없었다. 정말 ‘황당한’ 예외적인 뒤틀기 그런 경우를 제외하곤 말이다. 소위 말하는 ‘비타민이 없는’ 이런 책 계속 읽는 것은 그냥 혼자 자리 깔고 화투 치는 그런 격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