혈투
몇 년 전의 일이었다. 집사람이 개싸움을 말리다 큰 부상을 당해 실려 갔다는 연락을 받고 병원으로 달려갔던 것이.
그때 내가 말했었다. 개싸움이 일어나면 그냥 내버려두는 수밖에 없다고.
그런데, 그제 목요일에 있었던 일,
아이들 영어 가르치기로 한 것은 밤사이 내린 눈으로 취소하고,
뚝디는 풀고 뚝뚝이에는 목줄을 걸고 눈길 산책을 나갔는데, 먼 곳에서 뚝틀이가 달려와 수놈 둘의 사투가 벌어졌다.
싸움이 일어나면 언제나 날렵한 뚝틀이에게 뚝뚝이가 일방적으로 당하곤 했었는데, 이번엔 뚝뚝이가 뚝틀이의 주둥이를 물었다.
사실 서로가 서로에게 물린 형국이지만, 이런 상태에서는 기운이 압도적으로 우세한 뚝뚝이의 게임.
물에서 갓 잡아 올린 잉어가 펄떡거리는데도 그 힘이 엄청난데, 하물며 개들이야.
마치 불독처럼 상대의 주둥이를 물고 흔들어대는 뚝뚝이, 엄청나게 쏟아지고 튕기는 피.
개싸움은 말릴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흥분 상태의 개들에게 내가 위험해질 수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 끔찍한 모습에, 이 녀석들을 떼어내려, 내 수없이 등산화로 발길질을 했지만, 아무 소용없이 흔들어대는 뚝뚝이.
설상가상, 다른 때 같으면 방관만 하고 있을 뚝디까지 대들어 뚝틀이의 뒷다리를 물고 마구 흔들어대고...
5분? 10분? 결국 기진맥진(계속 밤을 꼬박 새우곤 하는 나, 기운이 있을 리가 없지)
나도 넘어지는데, 얼굴로 아스팔트를 박아, 코에서 입에서 얼굴이 피투성이...
(머피의 법칙, 눈 쌓인 길가가 아니라, 하필 눈이 치워진 길 한복판에...)
길 한복판에 쓰러진 것은 알겠는데, 일어날 기운은 없고....
(다행히, 지나가는 차는 없었고, 사람도 없었고...)
어쨌든 있는 힘을 다해 줄을 끌어, 길 옆 매실수에 걸고 그 줄을 당겨,
뚝뚝이의 목을 끌어올려 마치 목 매달은 것처럼 만들어, 떼어놓는 데까지는 성공했는데,
주둥이 부위에서 ‘흘러내린’ 살에서 피가 떨어지는 뚝틀이의 모습은 차마 볼 수 없을 정도....
그런데, 이번엔 숨을 돌릴 것으로 기대했던 뚝틀이가 '그 몸으로' 뚝뚝이를 공격하기 시작하고,
다시 내 발길질은 다시 시작되고.... 내 얼굴과 무릎에서의 피에 이 녀석들의 피에 옷은....
집에 와서 소독약으로 아무리 닦아도 얼굴에 박힌 모래가 빠지지 않고...
어지럽기 그지없는 상태에서 가까운(9km 정도 떨어진) 의원에 가니,
(119는 너무 오래 걸린다는 것은 이미 경험해 알고 있고...)
자기는 어쩔 수 없으니 다른 곳에 가라는 의사.(간호사가 나중에 조용히 들려주는 말, 의료분쟁이 생길 소지가 있는 것은 피한다고.)
결국 다시 차를 몰아(이번엔 아주 천천히), 15km 정도 떨어진(‘낭만적’ 전원생활의 치명적 단점은 바로 이런 경우) 치과로 갔더니,
다행히 이는 부러지지 않았다고.
다행히 개들은 죽지 않았고,
나도 유튜브에서 45부작 '江山風雨情'을 보며 우울증에서 벗어나려 애쓰고...
이틀이 지나 ‘사람 얼굴’로 돌아온 오늘, 혀에 자꾸 긁히는 곳을 거울로 보니, 이가 부분적으로 부서져나갔네.
그날 내 얼굴이 너무 피투성이, 또 어차피 다시 올 환자라, 의사가 보지 못했던 것일까?
아직 양치질을 하기 힘들 정도로 이에 아니 이 뿌리에 통증이 남아있는 것을 보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