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그날 - o

브루크너의 낭만교향곡

뚝틀이 2015. 12. 19. 19:55

Anton Bruckner - Symphony No. 4 in E flat major "Romantic"

 

버스에서 내려 학교로 들어갈 때, 저 멀리 1호관 꼭대기 스피커에서 흘러나오곤 하던 이 곡.

아르바이트로 번 돈을 몽땅 소매치기 당하고, 허탈한 마음으로 교정에 들어설 때, 그때도 나오던 이 곡.

뭐가 좋은지 모르면서도, 학생 때 그렇게 '열심히' 듣던 곡이다.

그런데, 오늘은, 왜 엉뚱하게, 전혀 어울리지도 않게, 자꾸 장송곡으로 느껴지지?

이젠 손가락의 윤기도 사라져, 스탠드의 센서도 잘 반응 않고, 이 노트북의 터치패드조차 반응을 거부하곤 하는 이 상태,

오늘도 걷기 시작 2시간도 안 되어, 무릎의 통증이 다시 살아나기 시작하고...

생각은 자꾸 고등학교 대학교 그 시절, 그때로 돌아가 흐르곤 한다.  

 

 

 

팔이 마비되어 병원에 다녀온 것을 '도덕 점수'에 반영시켜, 내 장학금이 떨어지게 한 그 교감선생.

조그마한 방 두 칸에 여섯 식구가 살던 그 시절, 그때 갑자기 등록금을 마련할 수가 없어..... 

(그때는 내가 대한민국 최빈곤층이었음을 몰랐다. 나중에 생각해보니 그랬다.

 그래도 학교라는 데를 다닐 수 있었으니....

 그 교감의 이름과 표정은 지금도 즉시 머리에 떠오르곤 한다.)

'헛소리'만 떠들어대는 국어선생에 대한 반항으로 책상에 잉크를 뒤엎고, 교실을 뛰쳐나가.....

차라리 이제 학교를 그만 다닐까 고민, 정말 심각하게 고민....

열등감, 그때 나는 열등감의 화신이었다.

밖에서 선배를 팼다가, 다음 날 그 학년들에게 화장실 뒤로 끌려가,

이젠 정말 어쩔 수 없구나 하는 순간, 극적으로 달려와 나를 구해주던 밴드부 선배들.

이것저것 모든 것이 불만이었던 내게 그래도 낙은 점심때 합창부 저녁때 밴드부 연습시간.

특히, 나팔을 입에 물고 언제 그 고소하고 기름진 만두 빵이 나오나 그것만을 기다리곤 하던 그 시간.....

어두워질 때까지 그 '규율 센' 연습. 그것이 끝나자마자, 만세, 쏜살같이 도서관으로 달려가 미친 듯 책에 빠지곤 했었다.

소설은 기본이고, 심리나 정신분석이라는 단어가 붙으면, 그 녀석들은 아예 삼켜버리곤 했었다.

물론 당시 나의 전공후보 최우선 순위는 당연히 심리학과나 도서관학과.

평생 책에 묻혀 사는 것. 이보다 더 행복한 삶이 있을까?

친구처럼 다정하게 대해주시던 사서담당 선생님이 나를 타이르셨다.

네가 지금 좋아하는 것은 어느 분야라기보다는 그저 무엇인가에 빠져들어 배운다는 즐거움 그 자체일 뿐,

장래 무엇을 하며 어떻게 살 것인가 생각하기 이전에 해야할 일은 어떤 사람이 되기를 원하는지 마음의 소리를 들어보는 것이라고.

(거의 20년이 흐른 시점, 버스에서 만난 그 선생님이 내 이름을 부르실 때, 얼마나 놀랐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