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울부짖는 소리 들려요? 이 피를 토하듯 미친 듯이 울부짖고 있는 이 소리가. 어지러움에 쓰러졌다 다시 일어나 울부짖고, 그러다 또 다시 쓰러지고.
내 이름은 뚝진이. 어떤 아저씨가 무뚝뚝하지만 진득하게 살라고 지어준 이름이에요. 계집아이의 이름치고는 정말 멋도 없는 이름이지만 그래도 날 뚝진이라 불러주던 그 아저씨가 그리워요. 몸서리치도록 그리워요. 아니, 미워요. 정말 미워요.
난 하얀 옷을 입고 있어요. 하얗기보다는 조개껍질같이 은은하게 반짝이는 은백색의 옷을. 방금 샴푸를 씻어낸 내 모습을 보고 반하지 않는 사람이 있다면, 아마도 그 사람의 마음속엔 따뜻함이 그림자도 없기 때문일 거예요.
내 누구를 닮았냐고요? 글쎄. 그건 나도 모르죠. 우리 아빠도 엄마도 모두 까맣고, 내 형제자매 모두 까만데, 나만 이렇게 됐다고 그러던데요. 아마도 먼 조상 중 누군가가 눈부시도록 하얗게 차려입었었던가보죠. 어쨌든 우리 엄마에게 먹을 것 집어넣곤 하던 할아버지가 알기로는 엄마 아빠 어느 쪽에도 가까운 조상 중 은빛은 없었대요.
아 참 난 날개도 있어요. 거짓말 말라고요? 아냐 정말이에요. 내 갈기엔 학의 날개까지는 못되더라도 학 날개의 빛깔로 흰 털이 솟아있어요. 아마도 학고개 마을에 올 내 운명이 이 날개에 실려 있었던 모양이죠.
아저씨가 미워요. 우리 아빠 이야기를 들었을 텐데. 어찌 나를 버릴 수 있단 말이에요. 우리 아빠 이야길 알 만한 사람은 다 알고, 분명 아저씨도 들었어요. 울 아빠는 짐 가득 실은 화물차 꼭대기에 의연히 앉아 제천 시내를 누볐던 유명 인사에요. 한번 마음먹으면 그깟 흔들리는 차 꼭대기에서 균형 잡는 것쯤이야 어려울 것이 무엇 있겠어요. 더구나 앉아서 말이죠.
사람들은 참 이상해요. 앉아있으라 해서 앉아 있을 뿐인데 왜들 그렇게 대견스러워하는지. 나도 아저씨가 앉으라하면 앉고 엎드리라하면 엎드렸잖아요. 날 앉혀놓고 엄숙한 표정으로 그대로 가만 앉아 있으라 하며 부르릉 부르릉 차타고 떠날 때도 난 속으로 웃었죠.(미안!) 내가 없어질까 누가 날 집어갈까 불안한 것은 오히려 아저씨 쪽인데도 어찌 저리 큰 폼을 잡고 있나, 그 생각하면서요. 부랴부랴 다시 와서 날 쓰다듬으며 귀여워하던 그 귀여운 모습이라더니! 그렇게 나 없으면 못살 것 같아하던 그 아저씨가 날 버려요?!
내 이 처절한 울부짖음을 아저씨 듣고 있어요? 물론 듣고 있겠죠. 도란도란 모여앉아 소곤소곤 나누는 사람들의 이야기소리조차 아주 가깝게 들리는 이 산골마을인데. 빤히 내려다보이는 곳에서 몸부림치며 내 뱉는 이 소리를 못 들을 리 있겠어요? 아저씨 마음이 찢어진다고? 그래 찢어져라. 찢어지고 또 찢어져라.
아저씨. 아니 할아버지. 사람의 마음을 아니 강아지의 마음을 어찌 그리도 헤아리지 못했나요. 그런 수준으로 어찌 세상을 지금까지 살아 오셨나요. 나 말에요. 난 이제 태어난 지 겨우 석 달 밖에 안 됐어요. 사람나이로 따져도 세 살도 아닌 겨우 두 살배기란 말에요. 아저씨가 암만 잘해줘도 난 내 친구가 그리웠단 말에요.
참 이참에 아저씨 가슴아파해도 어쩔 수 없는 이야기를 해야겠네요. 내 지금 이리 울부짖는 것은 아저씨가 그리워서가 아니라 내 친구들이 그리워서예요. 섭섭하다고요? 그렇지만 그게 사실인 걸 어떻게 하겠어요. 아저씨. 나 좀 잘래요. 너무 힘들어요. 이제는 잠들 기운밖에 남지 않았어요.
다 같은 핏줄인데 왜 저들은 다 저렇게 잘 생기고 멋있죠? 근데 난 왜 이렇게 작고 못났죠? 혹 우리 조상 중에 누가 은빛이었던 게 아닌가 하는 것은 내 희망에 지나지 않고, 무슨 결핍증인가하는 것 때문에 생긴 그 돌연변이 아닌가요. 내 날개의 깃털도 그래서 생긴 것이고요.
난 내 형제자매들이 어디론가 들려나가는 걸 봤어요. 걔들을 볼 때 반짝반짝 빛나던 사람들의 눈이 비실비실한 나를 그대로 스쳐가곤 하는 것도요. 나이가 어리다고 본능이 어린 것은 아니잖아요. 아저씨 오해 마세요. 누가 데려가는 그들이 부러웠던 게 아니고 누가 나를 끌고 갈까봐 겁나하다 남겨진 나에게 안도하는 그 본능 말에요. 결국 나라도 탐내는, 아니 어쩌면 우리 엄마 아빠 이름값을 탐내는, 어떤 아저씨 덕분(?)에, 아저씨가 본 그 우리 안에서 내가 살게 된 거에요.
비록 꿈속이지만 난 아저씨가 눈살 찌푸리던 그 지저분하고 냄새나는 우리 속에서 친구들과 뛰어놀고 있어요. 아저씨도 기억하시죠? 내 귀엽게 뛰어놀던 그 모습을.
아저씨가 날 데려가던 그 날 말에요. 사실 난 그저 내 아부지와 새벽 산보나 나가는 줄 알았어요. 그래서 그리 좋아했던 것이고요. 아저씨에겐 원래 딴 어린아이가 오기로 되어 있었지만, 어찌어찌하여 내 아부지가 그 딴 아이를 받기로 하고, 천덕구러기 내가 아저씨한테 처리된다는 것을 내 어찌 알았겠어요.
사람들의 그런 얄팍한 속셈까지 알아차릴 수 있다면 내 이미 늙은 여우지 어찌 석달배기 강아지겠어요. 어쨌든 아저씨 고마워요. 이것저것 따지지 않고 날 선뜻 받아주신 걸. 그리고 이름도 없던 나에게 뚝진이란 이름을 지어주신 것도요. 나를 부르는, 내게 먹이를 주겠다는 휘파람소리, 또 그 이상한 여러 소리들에 아저씨의 사랑이 들어 있었던 것에 대해서도요.
아저씨가 날 씻어주려 욕실로 갔을 땐 난 처음엔 죽는 줄 알았어요. 그렇게 물에 흠뻑 젖어보기는 난생 처음이었거든요. 그래도 그 다음부터는 제가 얌전했던 것 인정해 주시는 거죠? 아저씨.
그렇지만 아저씨. 첫날 나에게 한 말은 너무했다. 솔직히! 내 그 고급스런 샴푸 향기에 젖어 따뜻한 그 방에서 곤히 잠들어있는데, 어이 이 구린내 정말 못 참겠네 하며 날 문밖 라면상자에 집어넣으시던 것 말에요.
물론 아저씨는 신문지 겹겹 깔아주느라 내 얼굴 빨개진 것을 보지도 못했지만, 난 그 다음날 아침까지 부끄러움에 아무 소리도 낼 수가 없었고, 그 상자도 벗어나지 못했단 말에요. 착하다고 아침에 날 쓰다듬어 주실 때 내 얼마나 어이가 없었던지.
아저씨. 이 꿈속에서나마 난 다시 아저씨 무릎에 앉아 그 맛있는 멸치 하나하나 아작아작 씹고 있어요. 아저씨가 턱으로 내 머리를 비비고 있네요. 참, 아저씨. 내 그 구린내도 며칠 가지 않아 다 없어졌죠? 우리 진돗개라는 종자가 원래 똥개에요, 똥개. 우리 선조 살던 그 진도가 무슨 압구정이라도 되는 줄 아세요?
어쨌든 아저씨 고마웠어요. 그 우리에서 쫓겨난 첫날 내가 큰 거 보려할 때 뒤에서 붉은 피가 뚝뚝 떨어지는 것을 보고 놀라 그 먼 곳 병원까지 날 데려가 주셨던 거 말에요. 끔찍한 주삿바늘이 날 꾹꾹 찌를 때마다 아파할까 날 꼭 붙잡고 있던 아저씨 그 팔목냄새 아직도 기억해요. 이제 이렇게 튼튼해 진 것도 다 그 작은 아픔들을 꾹 참아낸 그 덕 아니겠어요? 그렇지만 아저씨도 기억하셔야 되요. 아저씨가 그때 심하게 넘어져 일어나지도 못했을 내가 아저씨 핥아주며 기운을 북돋아 주던 것을. 아저씨랑 산에 갈 때도 또 넘어지실까 걱정되어 멀리도 못가고 부지런히 앞뒤를 오가던 귀여운 내 모습을.
아저씨. 마을회관 이층에서 항상 시무룩하게 있던 내 모습. 아저씨가 제대로 본 거에요. 아저씨가 아무리 잘 해 주려 하셔도 우리 진도 출신들에겐 엄마 떠난 후 첫 아저씨가 아부지거들랑요. 아저씨는 결국 아저씨고요. 그렇지만 아저씨 아이큐 어떻게 된 것 아녜요? 그 아저씨(이젠 아부지라고 부르기도 싫네요.)가 내가 싫어서, 뒷거래까지 하면서 날 아저씨에게 떠 넘겼다는 것을 왜 잊었냐는 말에요.
내가 집에선 항상 시무룩해 있는 것이 너무나도 안쓰러워 돌려보냈다고요? 아저씨! 나랑 며칠 다니던 그 여행 때의 내 모습은 왜 까맣게 잊으신 거예요. 우리가 비록 엄청난 나이 차이였지만, 우리보다 더 다정한 연인이 어디 있었던가요? 나에겐 아저씨뿐이었고, 아저씨에겐 나뿐이었잖아요.
그렇지만 마을회관 우리 집에선 저도 어쩔 수 없었어요. 내 친구들이 숨소리도 들릴 정도로 가까운 곳에서 놀고 있는데, 내 어쩔 수 있었겠어요. 목줄도 묶지 않았는데도 가만히 엎드려있는 내가 대견하지도 않았어요? 하지만 내가 그곳으로 슬며시 사라지곤 했던 것은 나도 어쩔 수 없는 일이었어요.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내 발이 나를 그리로 데려가곤 했던 거예요.
아저씨. 내 울부짖음이 들려요? 이건 한심한 아저씰 향한 내 피 쏟는 절규에요. 조금 더 생각했어야죠. 아저씨의 즐거움을 위해 내 행복을 빼앗을 수 없어 나를 돌려준다고요? 얼마나 감동스러운 이야기에요. 사랑하기에 놓아준다!
날 돌려주신 그 다음날 내 친구들과 뛰어놀면서 아저씨의 그 끊임없는 휘파람 소리 들었어요. 날 불러주던 그 다정한 휘파람 소리가 금수산을 타고 오르는 것을. 깊은 계곡에서도 저 멀리 능선에서도 나를 향해 끊임없이 계속되는 울먹임 섞인 그 휘파람 소리를.
그렇지만 난 아저씨에게 달려갈 마음이 조금도 없었어요. 내 친구 내 아부지를 두고 내 어딜 가겠어요. 그렇다면 그거야말로 바로 지조 없는 일 아니겠어요?
그런데 그날 저녁 바로 그날 저녁 이렇게 마른하늘에 날벼락 떨어지는 일이 일어난 거예요. 내 아부지가 날 또 딴 아저씨한테 하루 만에 넘기다니! 아저씨 아이큐가 얼마에요? 미안해요. 나이가 들었다면 어른큐가 얼마에요? 그 집 그 우리에 있던 내 선배들의 보통 체류기간이 얼마였던가를 생각해본 적이 있나요? 내 행복을 위해서라고요? 하!
바로 그날로 이렇게 팔려가지 않았다하더라도 내 행복이 얼마나 계속될 수 있었는지도 생각했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