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히 손에 잡힌 책에다, 더구나 현직의사가 썼다는 소설이니, 여느 때 같으면 읽어볼 대상에 속하지도 않는 그런 책이지만, 마침 요즘 읽고 있는 책이 너무 딱딱해, 잠깐 그냥 지나가는 호기심으로 몇 페이지 들쳐본다. 무슨 위원회 회의 장면이 나오고, subliminal 효과 이야기도 나오는데, 아니나 다를까, 문장흐름도 장면묘사도 한참 덜컹거려 읽기가 거북하다. 덮어버려. 그러다, 호기심이 발동한다. 명색이 추리소설 아닌가. 뭘 어떻게 꾸며나가겠다는 거지? 심심풀이 반 호기심 반으로, 달리 할 일도 없는데 뭘 하며, 다시 몇 페이지 더 넘겨본다.
정신과 의사가 의처증 남편을 다루는 장면이 진행되다가, 갑자기 트랙이 바뀌며, 이번엔 그 의사의 죽음이라는 과거사실을 캐는 기자 이야기가 나온다. 어허. 이것 봐라. 이제 겨우 한 트랙을 여는 단계인데, 벌써 이것을 과거로 한 다른 트랙을 나란히? 플롯이 궁금해진다. 남의 세계에 뛰어드는 비전문가들의 특징은 뭐라 할까 자기에게도 뭔가가 있다는 것을 보여주려는 처절한 ‘프로 흉내’ 아니던가? 이 작가 역시 자기 딴에는 큰 틀에서의 ‘반전 시리즈’ 구상에는 뭔가 보여줄 수 있다는 자신감으로 이 ‘추리소설’을 책으로 냈겠지? 어디 조금만 더 읽어봐?
역시 걱정했던 대로 진부한 나레이션이 신경을 거스른다. 하지만, 비록 매끄럽지는 못하지만, 트랙 B의 출현으로 트랙 A의 진행에 힘이 실린다. 의사의 오만과 환자의 반감이 섞여들고, 그 의사의 과거와 환자의 과거 역시 소용돌이를 일으키는데, 여기에 제3자로부터의 비밀스런 쪽지가 끼어든다. 어느 정도 진행되며 이야기의 결말이 예상되는데, 책은 아직 반 정도밖에 지나지 않는다. 도대체 무슨 반전이 있으려는 거지? 결국은 좀 허탈해진다. 현상적 자살 뒤에 숨겨진 실질적 타살이라는 것을 ‘설명’하는 ‘축 처진 2부’의 진행. 어쩔 것인가. 이렇게 하다, 결국은 이 책을 끝까지 읽게 된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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