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읽기

David Wroblewski의 ‘The Story of Edgar Sawtelle’

뚝틀이 2009. 8. 26. 19:50

소설가는 왜 소설을 쓸까. 소설에는 두 가지 종류가 있다는 생각이 든다. 하나는 뛰어난 묘사력을 무기로 하고, 또 하나는 전혀 예측할 수 없는 방향으로 스토리를 전개해가며 사람들의 마음을 휘어잡는 그런 상상력을 무기로 하는.

 

물론 이 책의 스토리 전개에 무슨 허술함이 있다는 그런 것은 아니다. 한 소년. 말을 할 수 없는 장애를 안고 태어난 한 소년. 좋은 종자의 개를 고르고, 태어난 강아지들을 충분히 훈련시켜 ‘명견’을 공급해주는 것으로 업을 삼는 단란한 가정에서 자라나고 있던 이 소년에게 운명의 회오리를 몰고 온 삼촌이라는 존재. 의문의 죽음을 맞이하는 아빠를 지켜볼 수밖에 없었던 장애인 소년. 삼촌이 범인임을 밝히려 하지만, 이미 그와 눈이 맞아버린 엄마의 단호함. 삐끗하는 운명의 순간 엉뚱한 희생자가 생겨나고, 세 마리의 개를 데리고 숲속으로 피신하고...... 아무 힘없이 운명이 정해준 코스를 따를 수밖에 없는 그 주인공 소년의 비참한 모습에 마음이 한 없이 숙연해진다.

 

하지만 이 책의 절대적 매력은 바로 그 묘사력. 소설이라기보다는 하나의 아름다운 산문집이라고나 할까. 차창을 스치는 바람소리, 흔들리는 나무 가지의 속삭임, 떨어지는 빗방울의 모습, 그 어느 것 하나 대충 지나가는 법이 없다. 마치 모든 것을 슬로우 모션으로 잡아놓고, 돋보기를 들이대고, 그 아름다움의 어느 한 부분 놓치지 않고 전해주려는 ‘시인 리포터’의 그런 산문기사처럼 말이다. 소설의 마지막 부분은 작가 필력의 압권 그 자체이다. 그 숨 가쁘게 돌아가는 긴박한 상황의 연속 속에서도, 때로는 저 위에서 내려다보는 신처럼(물론 작가가 만든 등장인물들이니 당연히 그럴 것이고), 때로는 주인의 생각을 읽는 개의 입장에서(물론 이 역시 마찬가지로 작가 자신의 나레이션을 대체한 것이지만), 작가의 상황묘사는 ‘얄미울 정도’로 ‘서두르지 않는 냉혈적 기자본능’을 잃지 않는다.

 

읽기 쉬운 책은 아니었다. ‘크지 않은’ 글자로 박아낸 562페이지라는 두꺼운 분량. 정신없이 사전을 뒤지게 만드는 쉽지 않은 단어들. 하지만, 어찌 불만 운운 할 수가 있겠는가. 그 숨 막히는 정확성의 표현을 위해, 또 아름다움 그 자체를 위해 그가 고른 단어들인데. 비록 두 권의 번역본보다 더 유리한 한 권 가격이라는 ‘경제적 관점’에서 택한 영문본이지만, 책을 읽는 내내 이런 것들은 번역본엔 어떻게 나왔을까 궁금해 하는 ‘건방진 사치’라는 ‘안도감’을 느낄 수 있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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