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그날 - o

사은회

뚝틀이 2011. 5. 14. 21:58

오늘 연구실 친구들이 베풀어준 사은회 자리. 인사말이라든가 무슨 말을 준비해갔어야 하는데, 주례사 준비에만 몰두하다보니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지 못했고..... 하긴, 그런 격식 차린 이야기 그런 것은 내 스타일에 맞지도 않고 또 아직 우리 친구들에게 그런 식의 틀에 박힌 이야기를 들려준 적도 없고..... 하지만, 오늘은 어쩐지 내가 남과의 관계를 참 너무 가볍게 생각하는 것은 아닌지 하는 자책감이 갑자기 들고... 그래서 평소 야생화 찍으면서 느꼈던 이야기를 들려주기로.... 이 세상 사람들을 꽃에 비유한다면 두 가지 타입이 있다. 하나는 우리가 보통 화초라 부르는 예쁜 꽃들로, 보는 사람의 즐거움을 위해 키워지고 개량되고 퍼져나가며 사람들의 칭찬이 곁들여지는 그런 종류의 꽃이다. 하지만 꽃의 입장에서 생각해보자. 가꾸어주는 손길이 사라지는 순간 그 화초의 생명력은 그것으로 끝이다. 존재의미가 남을 위한 남과의 관계 남의 관점 그런 것에 국한되어있다는 사실 얼마나 서글픈가. 여러분 이제 중년의 나이에 접어들었는데 지금이라도 자신의 존재가 그런 것 아닌가 살펴볼 때 아닌가. 하지만, 이 세상에는 다른 종류의 꽃이 있다. 바로 자연의 주어진 상태에서 자신의 공간과 시간을 찾아 자신만의 방법으로 살아나가는 존재. 바로 우리가 야생화로 부르는 그런 꽃이다. 처음 내 야생화를 몰랐을 때, 꽃들을 찾아 헤매고 다닌 곳은 양지바른 곳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야생화가 자리할 수 있는 곳은 그렇게 양지바른 곳이 아니라는 것. 사실 우리 인간들에게는 양지바른 곳 그런 삶을 지향하는 성향이 있지 않은가. 그러나 한 번 생각해보자. 과연 '양지바른 곳'이라는 곳이 그렇게 삶에 좋은 곳인가를. 너도나도 그런 곳에 한 자리를 차지하려 벌이는 그 치열한 생존경쟁. 실제로는 거기가 바로 가장 험악한 생존경쟁이 벌어지는 곳 아닌가. 지금 이 시절은 바람꽃이 지나가는 그런 때이다. 언 땅이 녹기시작할 때 변산바람꽃 너도바람꽃 이들이 아무도 아직 살아갈 용기를 내지 못할 때 가장 활발하게 삶의 사이클을 완성하고 다른 식물들이 올라올 때는 이미 종족 번식을 위해 씨 남기는 일을 마친 때이다. 또 질경이. 이 녀석들을 중국사람들은 车前草라고 부르는데, 다른 식물들이 살아갈 엄두도 못내는 곳에서 이들은 바퀴에 눌리고 마소의 발에 눌릴 때마다 뿌리를 더 땅속깊이 묻는 기회로 삼고있지 않는가. 이것이 생명력이요. 이것이 생존전략이다. 바로 이런 능력과 이런 기운이 담긴 것이기에 사람들이 이들을 약초로 삼는 것 아닌가. 우리의 삶에서 자신이 개발한 생존전략에 의지하고 자신고유의 향기와 에너지를 듬뿍 담을 수 있다면 그것이 바로 이 사회의 다른 사람에게 약초의 역할을 하는 것이고, 거기에서 또 각자 자기 나름대로의 고유 가치를 발견할 수 있는 것 아닌가. 지난 몇 해 동안 내 건강이 매우 좋지 않았던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요즘 곰곰이 생각해보니, 내 삶은 잡초인생이었다. 난 누구의 마음에 드는 것 그런 것에 가치를 두지 않았기에 행동이 가끔 모났고 성격도 온화 그런 쪽과는 거리가 있었다. 그 결과 보통 사람들이 생각하는 사회적 명성 그 관점에서의 성공가도 그런 쪽과 거리가 있었던 것도 사실이었고. 그런데 은퇴 후 산에 다니면서 혼자 생각할 시간이 많아지면서 자책감이 오기 시작하더라. 내 그때 왜 그랬지, 이랬으면 더 낫지 않았을까. 그런 것이 쌓이면서 후회와 회한이 겹쳐오기 시작했고, 그것이 나를 못살게 굴기도 했다. 자책. 자신에 대한 원망, 내 자란 환경에 대한 원망. 하지만, 얼마전부터 생각이 달리지기 시작했다. 난 잡초였다. 그 잡초란 다름 아닌 야생화. 야생화의 아름다움은 자기다움. 내 삶 역시 나다움 거기에 의미가 있었던 것이고. 그런 쪽으로 생각이 바뀌어가며 통념적이고 세속적인 나 자신의 자책감으로부터 벗어나기 시작했고, 이제는 오히려 내가 잡초였음이 나 자신의 감출 수 없는 자랑이라고 생각한다고. 생각이 이렇게 긍정적인 관점으로 그 방향을 틀자, 우울증 그런 것 사라지고 건강도 몰라보게 달라졌다고. 또 그 긍정적 생각과 산행이 선순환을 일으켜 가속적으로 더 좋아지고 있다고. 내 이 이야기가 혹 여러분 중 자신의 정체성에 혼란을 느끼는 사람이 있다면, 어떤 도움이 되기를 기대한다고.....

 

하지만, 이야기를 아무리 열심히 해봐야 무엇한담. 소위 주례라는 사람이 예식장이 어딘지도 몰라, 첫 번째 엉뚱한 곳에 도착하고, 두 번째 또 엉뚱한 곳에 가고, 세 번째 비로소 땀 뻘뻘 흘리며 제 장소를 찾아가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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