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 별자리

별 볼일 없는 사람들이나 할 수 있는 일. 하늘의 별 보기

뚝틀이 2011. 9. 1. 04:10

음력 2일. 구름 한 점 없는 밤하늘. 반짝이는 별들. 그림처럼 선명하게 드러난 별자리들. 이런 그림을 볼 수가 있다니. 비록 모하비 사막을 건너던 그때 배드랜드를 지나던 그때, 그런 밤하늘까지 아니지만, 그래도 여기 내 집 내 들마루 위에 세상에서 가장 편한 자세로 누워 이런 장관 볼 수 있다는 것, 이 얼마나 굉장한 일인가. 물론 한 달 후, 또 그 후에도 다달이 이런 밤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렇더라도 이런 그림을 다시 볼 수는 없다. 추석도 지나고 밭작물 재배도 끝나면 이 마을 여기저기에 가로등 다시 환하게 들어올 것이고, 그것으로 끝일 테니. 야생화에서도 그랬듯이, 어디 보는 것으로만 만족할 수 있다던가. 사진. 기록. 공부. 되새김질의 즐거움, 그것이 바로 취미의 진수 아니던가. 더구나 오늘은 마눌님까지 서울 행. 여왕님 활동용 조명조차 필요 없게 된 이 암흑의 찬스를 놓칠 수 있겠는가. 하지만, 생각처럼 그렇게 간단치가 않다. 이 마을은 캄캄한데, 막상 사진에 담으려니, 아직 저 멀리 북쪽 제천으로부터 또 저 동쪽 단양으로부터의 도시불빛이 그쪽 하늘 별 사진 얻는데 적지 않게 방해가 된다. 북극성과 작은곰자리 사진 겨우 몇 장 흉내만 수준으로 얻어 본다. 마음에 전혀 들지 않는다./ 하지만 어쩌랴. 잠깐, 오늘 같은 밤이 또 어디 있겠나. 전혀 방해받지 않는 밤샘작업. 한 번 어때. 이제 몇 시간 기다리면 명장면이 연출 되는데, 바로 지금 바로 오늘이 그 '순간' 아닌가. 날개 달린 말 페가수스가 날아오르고, 거기에 탄 안드로메다가 나타나고, 그리고 이어서 그녀를 구한 영웅 페르세우스의 얼굴이 보이면, 이 세 주인공의 조합이 완성되는데. 원래 겨울 초 저녁 하늘의 별미지만, 이제 몇 시간만 지나면 그 장면을 오늘 미리 볼 수 있지 않은가. 취미와 직업의 차이. 몸이 더욱 더 힘들어질 때,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대감이 커지고 그 기대감으로 엔도르핀이 증가하면 그것은 취미요, 한숨 속 아드레날린만 더욱 더 분비된다면 그것은 직업. 그런데? 별 볼일 없는 사람에게 있어서는? 후자이기보다는 전자에 속하고, 그것도 자기 의지에 의해 거의 대부분의 시간을 그 속에서 보낼 수 있다면? '세상 사람들' 눈에 한심하게 보일지라도 하늘의 별을 쳐다볼 수 있다는 별 볼일 없는 사람 클래스에 속한 나, 이 얼마나 특권인가. 지난 며칠 동안의 뒤로 고개 젖히기 운동이 좀 과했던 탓인지, 목을 거의 가눌 수 없게 되어, 결국 오늘 서울 가서 진통소염제가 들은 독한 혈관주사 한 방 맞고(와~. 그 역했던 느낌) 또 며칠 분 약 타왔다. 미련의 극치. 하지만, 오늘 작업은 정말 본격적이다. 안드로메다와 페르세우스 끌고 오는 페가수스자리는 똑바로 하늘을 올려다 봐야하는 위치니. 카메라 그쪽으로 향하고, 파라미터 조정하고, 윈도우 들여다보는 일, 보통 고통이 아니다. 고통? 물론 힘들다. 너무 힘들다. 하지만, 이건 누가 시킨 것도 아니고, 내가 나를 위해하는 일 아닌가. 마음속으로 아무리 스스로를 위로해가며 작업을 계속해도 도대체 진척이 없다. 초점이 맞지 않고, 아무리 노출시간을 늘여도 별자리 겨우 구별될 정도로 흐리게만 나오고. 왜 이렇지? 정말 취미 맞아? 오기다. 이젠 오기다. 뭐야 이건. 어디가 잘못 된 거지? 낮엔 그렇게도 덥더니, 차가운 밤공기에 오한을 느낄 정도다. 미열까지 느껴지지만, 결국 두툼한 옷 껴입고 나와 작업을 계속한다. 하지만, 이제 절망적. 일이 잘 풀리진 않을 땐, 한걸음 옆으로 물러서는 것이 최고. 카메라는 무슨. 사진은 무슨. 아무리 멋지게 담아 봐도, 이렇게 파노라마 장관 그 느낌까지 담을 수 있나. 아예 안으로 들어가 쿠션이랑 덮을 것 가지고 나와, 큰 대자로 평상에 벌떡 누워버린다. 아 좋다. 시원하다. 별 자리 공부할 책도 갖고 나왔다. 딸 없는 사람들은 어떨까. 벌써 거의 5년 전에 선물 받은 책이다. 아마 별 자리 책으로 이보다 더 좋은 것 없을 것이다. 자세하고, 화려하고, 편리하고, 고급스럽고. 당시 이 녀석 제대로 된 직장도 아직 구하지 못하고 어렵게 살던 때인데. 거기에 또 다른 선물, 작은 LED 램프. 역시 이보다 더 좋은 도구는 없을 것이다.(그런데 이젠 흐릿해졌네. 응호야 몇 개 더 사서 보내라. 여기엔 아직도 그런 것 없다. 아 요란하게 큰 것들은 종류도 많은데, 열쇠고리에 걸어가지고 다닐 정도로 작은 것들은 아직 안 들어온 모양이다. 이번엔 비싼 것 말고 그냥 소모품으로 짧게 짧게 쓰다 버릴 것으로 몇 개 사서 민수 여기에 올 때 들려 보내라.) 그런데, 이게 웬일. 막상 하늘 사진에 차례차례 비닐 겹쳐놓으면서 즐기는데 손이 젖는 느낌이다. 세상에! 삼각대에 걸어놓은 카메라에 손을 대니, 그냥 물로 덮여 있다. 렌즈 쪽을 들여다보니 아예 흰 이슬카버에 뿌옇게 덮여있다. 이런 상태로 진행되었으니 내 아무리 애써봐야 어디 사진이 나올 수 있었겠나. 카메라를 방에 갖고 들어와 물기 다시 걷히기를 아무리 기다려도 별 반응이 없다. 지켜보는 주전자는 끓지 않는다던가. 이럴 때는 밤참이 제격. 오늘 부실했던 식사도 벌충할 겸, 맛있는 '특제'도 집어넣어가며 '라면요리' 만들어본다. 하지만, 역시 무리는 무리였다. 건강에 가장 위험한 상황은, 몸은 늙었는데 마음은 아직 과거의 자기인줄 착각상태에 남아, 욕심을 부리는 것. 따끈한 국물에라도 입맛이 가야하는데, 전혀 아니올시다. 도저히 삼킬 수가 없다. 결국 뚝디와 뚝틀이만 좋게 되었네. 뚝뚝이에게는 미안하지만, 거기까지 가고싶은 마음이 내키질 않는다. 하지만, 그래도, 포기할 수야 없지. 성진우의 노래, 포기하지마, 내 얼마나 좋아했었는데. 렌즈를 들여다보니, 좀 더 기다리면 될 것 같다. 벌써 4시. 아니 지금이 4시. 내 원래 계획했던, 내 담고자 하는 별들의 위치가 가장 좋을 때가 되는 바로 그때다. 다시, 시작. 땅. /세상일이 어디 뜻대로 되기만 하던가. 그 사이에 하늘에 드리운 옅은 구름. 어떠냐. 별자리 사진만 얻으면 되는 걸. 불가항력적 상황변화에 목표의식 수정. 이번에 거기에 더해 습관의 무서움. 다시 작업을 시작하는데, 내 각오가 달라졌다고 물리법칙도 거기에 따라올 리는 없는 법. 역시 렌즈에 밤이슬은 맺히고... 들어왔다 나갔다 반복하니, 마음이 급해진다. 습관. 내 사진 습관은 전적으로 야생화 접사. 거기는 각도도 내 마음대로 조정하고, 더 가까이 다가갔다 더 멀리 떨어졌다 하며 구도를 맞춰나가는 것도 내 의도에 따른 진행이었다. 그러나 지금의 피사체는 수십 수백 광년 떨어진 별들. 이것은 하늘에 매달린 그림판이다. 좀 옆으로 들여다보는 것도 안 되고, 찍는 각도도 야생화의 수평과 다른 하늘을 향한 수직. 아무리 주사 맞고 약 먹었어도 고개를 뒤로 크게 젖히는 것이 어디 그리 쉬운 일이던가. 논리적으로 생각하며, 또 차근차근 하나하나 체계를 따르면, 안 될 리도 없지만, 마음이 급하니 뒤죽박죽이다. 더구나 칠흑 같은 밤에 이 지쪼 삼각대 조절하기란. 정밀한 것은 좋은데, 아직 숙달이 덜 된 상태라, 자칫하면 카메라 쾅 뉴턴의 법칙 따를까 조마조마. 사람 삶도 어쩌면 이런 것 아닐까. 가까운 곳만 들여다보며 살다가, 어느 새 자기도 모르게 모든 생각습관과 스코프 거기에 고정되어있다가, 갑자기 멀리 멀리 있는 것 봐야할 때 우왕좌왕하는 것. 어쨌든. 오늘 밤 작업은 이것으로 그만. 일기예보에 따르면, 이 예보를 믿을 수 있는지는 모르지만, 적어도 내일 밤도 오늘 같이 맑은 하늘. 그 다음은 구름. 구름.

 

야간 작업 '베이스 캠프', 아침에 일어나 보니 그 처참하고 흉한 모습이..... 더구나 새벽에 몰려온 이 짙은 안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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