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고통스러울 수가.
왼쪽 다리가 찢겨져나가는 듯.
마치 전기 봉으로 신경을 찔러대듯.
누운 자세에서 몸을 돌리려 해도 단말마 저리가라 정도의 비명을 지르게 되니, 일어나 걷는다는 것은 꿈도 못 꿀 일.
사실, 얼마 전부터 이상한 느낌이 와, 서울에 가있을까 생각도 했었다. 만일의 경우에 대비해 둘 겸.
하지만 생각은 생각일 뿐, 서울 생각만 해도 끔찍하고, 더구나 누구에게 운전부탁하기도....
본격적 고통은 나흘 전부터였다. ‘디스크 통증은 신경감기일 뿐’이라는 생각이 전혀 통하지 않을 만큼.
그래도 참았다. 옛날생각이 나서.
옛날생각. 그때도 이번 못지않게 아팠었다. 병원에 갔더니 당장 수술해야 한단다. 척추수술이란 게 조금만 삐끗하면 어떻게 되는지 수없이 들어온 터라 겁부터 덜컥. 이제 앞으로 제대로 걷지도 못하게 된다면? 병원 문을 나서자마자 일식집부터 들린다. 그랬다. 그 당시 내게는 일식집은 감히 범접할 수 없는 고급 집이었고, 생선초밥은 꿈의 요리였다. 그땐 그랬다. 서글펐다. 이 초밥으로 ‘끝’이라니. ‘끝?’ 그건 확률놀음 아닌가. 미심쩍은 병원에서 수술연습도구가 될 수는 없는 일. 택시를 잡아타고 서울대병원으로 달린다.(전형적 서울대病? 그럴 수도 있겠지만 또 꼭 그런 것만도 아니다. 나에겐 이미 ‘산 경험’이 있었다. 고2때. 점점 힘이 빠져나가던 팔, 결국은 그 팔을 들 수도 없었고 가벼운 연필조차도 집어 올릴 수가 없는 지경이 되었다. 명동에 있는 높은 건물 병원에서 듣는 청천벽력 같은 소리. 팔에 있는 신경이 다 죽어 둔부와 잔등의 피부를 이식해야한단다. 돌이켜 생각하면 난센스 중에 난센스지만, 그때는 솔직히 사태의 심각성보다는 엄청난 수술비용에 대한 걱정이 훨씬 더 컸었다. 학교 빼먹고 아버지 몰래 내 찾아갔던 곳이 서울대 병원. 가만히 내 얘길 듣고 있던 ‘형’이 꿀밤부터 한 대 쥐어박는다. 지금 생각하면 아마 인턴 쯤? 선생님이라기보다는 형이라 느껴지던 그의 호통, “야xxx! 너 만날 방바닥에 엎드려 공부하지?!” 그때는 대한국민은 다 한 식구였다. 더구나 이 경우에 xxx는 애정을 표시하는 정겨운 낱말이었고. 그 ‘형’이 제대로 짚었던 것. ‘대한민국에서 제일 가난한’ 우리 집에, 어떻게 방바닥 위에 ‘무엇’이 놓일 여유가 있었겠나. 난 허구한 날 방바닥에 엎드려 읽고 썼고, 나의 불쌍한 팔꿈치는 늘 내 미련한 상반신 무게를 받치고 있었어야했고, 그래서 팔꿈치 살갗 밑 그 얇은 공간을 지나는 신경이 견디다 못해 ‘나 안 할래!’하고 화를 냈던 것. 어쨌든 서울대병원은 나를 대규모 피부이식수술 ‘비용’으로부터 구해준 곳이었다.) 이번에도 여기 어떤 이가 혹 나를 건져내주진 않을까? 하지만 여기서도 같은 이야기, 미루면 미룰수록 악화된다고. 힘없이 걸어 나오는데 문뜩 드는 생각, 그렇다면 집도의는? 누가 권위자인가 몇 사람에게 알아보니 이구동성 ooo교수란다. 다시 들어가 예약을 하렸더니 적어도 여섯 달은 기다려야 차례가 온다고. 이런 세상에... 멀뚱멀뚱 천장을 보다, 생각이 떠오른다. ‘빽’이라는 것이 있지 않은가. 어차피 대한민국은 ‘세 사람만 건너면 다 아는 사람’인 좁은 세상. 그런데, 믿기지 않는 사실, 내 그 양반과는 사실 누구 소개도 필요 없이 그냥 전화해도 되는 그런 ‘관계’였다. 늦은 시간 전화지만 반갑게 대해주는 그, 당장 ‘내일 새벽’에 보잔다. 새벽, 그의 방에 들어서니 어제 그 의사도 벌써 와있다. 그의 ‘보고’를 듣고 내 이곳저곳 만져보던 그 교수. 내 눈 앞에서 벌어졌던, 여기 절대로 묘사할 수 없는, 순식간의 그 놀라운 장면... 어쨌든 난 이번에도 또 ‘실험동물’ 신세를 면할 수 있었고, 그 일 후 난 생선초밥은 못 먹는다.
이런 ‘있었을 뻔 했던 아찔한 일’들이 생각나는 병원이라는 곳, 어찌 겁나지 않을 수가 있겠는가.
그래서 참았다. 그냥 참았다. 이를 악물고 참았다. 온몸이 식은 땀 범벅이 되도록. 그렇지 않아도 왼 팔이 지금 이 지경인데.
고생 끝에 낙이 온다던가? 그 다음 날은 견딜 만했다. 마침 찾아온 반가운 분과 편하게 이야기를 나눌 수 있을 정도로.
그런데 그 다음 날, 현충일, 공휴일. 갑자기 상황 악화. 이젠 생각이고 나발이고, 세상이 다 뒤집히는 순간이다.
그래도, 119에 가려던 손이 병원 응급실 번호부터 돌린다. 아비규환 그 끔찍한 그림....
입원실은 없단다. 참는다. 이를 악물고. 거기 가봐야 진통제 주사나 놔줄 것 아닌가.
진통제? 왜 그 생각을 미처 못 했지? ‘죽을 힘 다해’ 냉장고로 다가가 그 위에 놓인 약상자를 내려놓는다.
진통제 그런 것은 없다. 대신 파스는 있다. 딴 일로 받아놨던 약봉지도 눈에 띈다. 가릴 것 뭐 있나, 그냥 입에 털어 넣는다.
플래씨보placebo 효과? 이젠 이마를 간질이는 머리카락에 신경이 쓰일 정도로 마음의, 적어도 마음의, 여유가 생긴다.
죽기 살기 샤워. 그렇지 않아도 팔 하나는 못 쓰는 상태인 요즘, 샤워는 어차피 죽기 살기 필사의 행위예술이다.
금세 다시 땀범벅. 잠이 제대로 올 리가 있나? 동이 터온다. 창밖이 환해진다. 119를 불러? 잠깐! 응급醫에개 맡기겠다고?
참자, 조금 더 참자. 어차피 내 이 팔 때문에 정형외과에 예약이 되어있는 상태니....
시청 앞으로 계란으로 바위치기 행사를 벌이러 가는 차의 확성기 소리가 요란하다. 미안한 마음이지만 내 몸이 우선.
이웃이라는 존재의 의미. 초가집 목사님, 이 양반 아니었다면 내 오늘 발가락 하나라도 땅위로 들어 올릴 수나 있었겠나?
MRI. 내 차림새를 보는 의사는 미안해서 감히 권할 수 없다는 표정이다. 이 단어를 꺼냈다 금방 입을 다문다.
하긴, 사실, 나도 이해가 간다. 이 꾀죄죄한 차림에 이 초라한 몰골, 그렇지 않아도 방금 전 내 거울 속에서 보지 않았던가.
보험으로는 카버가 안 되는 이 MRI, 눈이 휘둥그레질 정도의 그 비용. 어찌 양심상 ‘시골사람’에게 권할 수 있겠는가.
하지만, 난 속으로 휴 안도의 숨을 내쉰다. 그냥 ‘넘겨짚기 설명’을 곁들여가며 수술을 권유한다면? 그 장면을.
MRI 사진을 들여다 보면서 하는 그의 말, “이 정도면 수술을 권하는 의사도 많겠지만, 자기 생각엔 약물치료 시도가 우선.”
휴~! 밖으로 나와 생선초밥이 아닌 아귀찜을 즐긴다. 듬뿍 얹어준 웃돈이 전혀 아깝지 않은 맛있는 ‘아구찜’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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