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그날 - o

...... 반드시 의사를 찾으십시오.

뚝틀이 2013. 6. 10. 03:05

마셨을 경우에는.

 

오늘 또 사고. 이제 이런저런 치매기 사고가 잦아지는 걸 보니 갈 때가 점점 가까워지는 건 틀림없는 모양.

 

오늘 '사건'의 발단과 진행은 이렇다.

책 좀 보고 인터넷 서핑 좀 하다보면 밤이 깊어지고, 그러다 보면 저녁 후 시간이 너무 흘렀다는 신호와 함께 출출해진다.

라면엔 질렸고,  오늘은 볼로냐 스파게티로. 요즘 은근히 요것에 맛 들렸다.

더구나, 한편으론 물을 끓이고 한편으론 전자레인지에 소스를 데우고 하려니 동선도 늘어나는 게 뭐 제법 좀 하는 기분이다.

살림의 지혜. 면을 건져낸 냄비에 다시 물을 담아 전기플레이트에 남은 잔열까지 활용. 내 살림엔 빈틈이 없다. (어흠)

 

맛있게 먹었으면, 깨끗이 설거지하는 것은 기본예의.

팔이 뚝 한지 57일 째. 그 동안 내 설거지도 못하고...   오늘 오랜만에 어디 한 번?

세정제 통 버튼을 꾹꾹 눌러도 나오는 게 없다. 다 떨어진 모양. 녹차향이 묻어나는 참그린 새 통 하나 뜯어 거기에 채워 넣는다.

살림 기본자세, 알뜰하게 남김없이. 플라스틱 통을 냄비에 거꾸로 세워 마지막 한 방울까지 흘러내려오게 받아낸다.(어흠)

전혀 생각 같지가 않다. 팔 하나만 흔들어가며  수저랑 컵이랑 그릇을 닦아낸다는 것이. 어쨌든 끝.

이제 이곳저곳에 널려있는 이것저것 들어내고 쓸어내고.... 드디어 설거지 끝. 만세!라고 생각했는데,

 

플레이트 위에 남아있는 냄비가 눈에 띈다.

몰랐네.

알맞게 따끈해진 그 물 한 모금....  

어~. 이 무슨 향이지? 아까 내 스파게티 끓이기 전에 내 이 냄비로 뭐 딴 거 했었나? 향긋한 냄새가 코를 간질인다. 녹차 향이 나는데....

혀에 닿는 맛도 과히 나쁘진 않다. 꿀꺽.

와~ㄱ! 악! 카칵, 칵~ 칵!

입 속이 막 찢어지고 불덩이가 목줄을 따라 흘러내린다. 

으~왁, 칵, 울르륵 가르르륵 콱... 

정신이 버쩍 든다.

아까 내 ‘마지막 한 방울’까지... 그 통을 세웠던 '마지막 잔열’까지.. 그 냄비에 있던 물을 ‘마지막 한 모금’까지....

울를르를 가르르륵 콱... 울륵 가르르르르륵 칵 칵...

 

눈물을 닦아내며 그 통 안쪽 반대편에 쓰인 주의사항 살펴봤더니, .....면 반드시 의사를 찾으십시오!

두 시도 훨씬 넘은 이 시간. 응급실로? 아서라 아서...

설마 죽기야 하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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