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토벤의 C장조 미사를 듣고 있다. 공연 전에 아들도 옆에 서서 함께 연습하곤 했던 곡이다.
무대에 선다는 것은 기분 좋은 일이다.
대학시절, 그 넓은 홀을 꽉 채우고 밖으로까지 넘쳐났던 청중 앞에서의 중창단 공연,
연말마다 ‘메시아’에 ‘천지창조’ 합창단의 일원이 되던 즐거움,
또 이름은 잊었지만 외국의 무슨 지휘자를 초청하여 열렸던 KBS의 9번 합창교향곡 무대에도 올랐던 뿌듯함.
하지만 나의 이 ‘음악 삶’은 유학길에 오르며 끊어졌지만, 그래도 ‘무대 경험’들이 계속 되기는 했다.
수천 명 앞에 서곤 했던 워싱턴 뉴욕 북경에서의 논문 발표.
하지만, 그것들은 이제 다 지난 이야기,
지난겨울, 마비증세가 온 후로는 저 앞의 먼 산을 바라보며 마지막을 생각하곤 하다 유튜브를 뒤져보는 것이 고작.
오래 전에 케이블방송으로 가끔 보곤 했던 CCTV의 중국사극들이 올라 있어, 열심히도 보았다.
망해가는 나라를 어떻게든 건져보려 애쓰던 명나라 마지막 황제인 崇禎帝를 다룬 江山風雨情,
청나라 초기 황실의 위기를 다스려 나가는 효장강 황후를 실감나게 그린 大淸風雲,
그후 중국 역사상 가장 융성기였다는 康熙大帝, 擁正王朝, 乾隆王朝.... 모두 평균 40회 정도의 방대한 분량.
그러다 이제는 젓가락을 들 힘조차 사라지고, 몇 걸음 옮기지도 못하는 상태에서,
내가 TV앞에 앉게 되는 유일한 프로그램인 K-Pop Star가 시작되고,
어떤 면에서는, 지금 내 삶이 지금 연장되고 있는 것은 오직 그 덕분이다.
하지만, 불행히도 이번에는 지난 시즌의 ‘라쿤 보이즈’나 ‘짜리몽땅’처럼 달리 내 마음을 사로잡는 팀이 없고,
심사위원들 특히 내가 천재라고 감탄하곤 하는 박진영이 극찬하는 노래 또 가수들에게서도 어떤 매력을 느낄 수가 없다.
아니, 뭐가 좋다는 것인지 도대체 이해가 가지 않아, 첫 회부터 지금까지 다시보기를 벌써 적어도 세 번, 그래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새로운 각도에서 이 '다시보기'가 흥미롭다.
마치 결말을 미리 알고 있는 드라마를 보듯, ‘운명의 진행’을 모르는 주인공들의 모습이 실감나게 다가온다.
그들의 입장에 서기도 하고... 운명.
갑자기 지금 드는 생각. 오래 전 ‘8상 체질 의학’ 권도원 박사의 진단. 물과 나는 상극이라고.
그렇다. 체질과 상관이 있겠냐마는 다섯 살 때인가 우물에 빠지기도 했고, 고등학교 때는 두 번씩이나 강물에 떠내려가기도 했고,
나중에 와이키키에선 제방까지 갔다 돌아오는 길에 탈진상태에 들어가기도 했고....
어쨌든 지금 베토벤의 미사를 듣고 있다. 벌써 몇 번씩이나 돌고 돌아 다시 Kyrie가 시작되고 있다.
이제 모차르트와 코즐로프스키의 레퀴엠으로 옮겨갈 시간.
'그날그날 - o' 카테고리의 다른 글
Kpop Star, 복권 (0) | 2015.03.15 |
---|---|
3뚝이, 눈, 한중일 (0) | 2015.03.13 |
혈투 (0) | 2015.01.24 |
2014년을 보내면서 (0) | 2014.12.31 |
2014년 마지막 눈 (0) | 2014.12.3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