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 별자리

별 볼일 있는 사람

뚝틀이 2010. 2. 6. 20:42

 

    

               오리온 자리                                                     큰개 자리                                                   북두칠성

                      (위의 대충 보이는 사진에 클릭하면 제법 크게 제대로 나온 원본의 축소판이 보임)

 

“취미가 뭐죠?” 무슨 취미를 즐기느냐 묻는 상대의 의도와는 달리 내 귀에는 어쩐지 “취미란 게 뭐죠?” 뭐 이런 분위기로 들린다. 글쎄, 취미라는 것에도 무슨 의미가 있을까? 학생 때까지 ‘놀아보고’ 그 이후론 쉬어본 적이 거의 없었던 내게, 이제 별 볼일 없는 신세가 된 내게, 지금 취미는 그냥 단순한 ‘취미’ 그 이상의 의미로 다가온다.

 

손금을 배워 내 자신을 들여다보기 몇 십 년. 내 원래 쇼펜하우어 정도는 되었을 그런 고민덩어리였고, 또 누구 못지않게 세파 속에 시달릴 그럴 운명이었다. 실제로 살아온 모습 돌이켜보니 손금이 맞기도 했고. 그런데, 신기하게도, 그 모든 것이 지난 이제 다시 손금을 보니, 내 지금 단계의 삶은 단순 그 자체다. 없다. 아무 것도 없다. 별 볼일 없는 사람.

 

평생직장을 떠나고 나서도 서울에 남아 있어야할 이유를 찾을 수 없어 시골로 내려온 지 벌써 5년째. 그런데, 이상하게도, 별 볼일 없는 지금 좀 한가하게 지내는 것이 당연한 지금에도, 그 어느 때보다 오히려 더 ‘바쁘다, 바빠’다. 전공이나 돈 벌이나 그런 것과는 전혀 상관없는 취미생활로. 그래서 아까 그 질문에서 엉뚱한 뉘앙스를 느끼게 되었던 모양이다.

 

프로기사들과 어울릴 때 들었던 말. 자기들은 전문기사고 저들이 프로기사란다. 기보를 남겨야 하는 자기들은 바둑의 예술성을 지향할 수밖에 없는데, 저기 저 아마고수들은 내기에 이기는 것 거기에 올인 한다고. 프로와 전문가. 자신이 하는 일에 고양된 의미를 부여하는 것. 직업인의 자긍심에 이것만큼 중요한 것이 또 있을까? 지금 나는? 거리와 시간에 대한 개념 따위는 상관없이 전국 방방곡곡을 야생화 찾아다니느라 바쁘게 지내는 내 이 생활은?

 

한 번 동호인 모임에 동행한 적이 있었다. 딱 한 번. 취미생활의 동호회인데, 전문가들보다 더 진지하고 심각한 분위기다. 진귀한 꽃만 꽃이고, 요란한 장비라야 제격이다. 오래 잊고 있었던 그 ‘프로기사’들 연상이 되어, 경쟁심과 스트레스의 세계에 다시 발을 들여놓게 될까 겁나서, 그날 남들보다 먼저 일찍이 혼자 돌아왔다. 그 전에도 그 후에도 난 혼자다. 언제나 혼자 다닌다.

 

친구들이 묻곤 한다. 그렇게 혼자 내려가 있으면서 외롭지 않으냐고. 사람들이 그립지 않으냐고. 그들은 모른다. 자연과의 만남. 새들 노랫소리에 눈 뜨고, 정처 없이 발길을 옮기다, 전혀 예상치도 못했던 곳에서 ‘꽃’을 만날 때의 그 기쁨. 카메라에 담느라 요가 못지않은 괴상한 포즈를 취해야 하는데 그것도 모르고 몰입되는 그 무아지경. 그 사진 들여다보며 아까 찍을 때는 보이지 않았던 마이크로세계의 그 신비함에 대한 경외감. 외롭기는 뭘. 그립기는 뭘.

 

사람들이 그립냐고? 그들이 모르는 것이 있다. 직장생활 하던 때 익숙했던 사람들과는 전혀 성격이 다른 사람들이 찾아오곤 한다는 것을. 꽃만큼이나 반가운 사람들이. 또 있다. 그들이 모르는 것이 또 있다. 낮에만이 아니라 밤 깊은 밤에도 만나는 이들이 있다는 것을. 저 하늘의 별들. 계절 따라 변하는 그 모습 그 분위기. 추운 겨울에도 온갖 옷 다 껴입고 덜덜 떨면서도 하늘을 쳐다볼 때의 그 기쁨을.

 

내 별 볼일 없는 사람이라고? 천만에 내 별 볼일이 얼마나 많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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