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서 시내 들어가는데 족히 30분은 걸린다. 근처에서 장 보면 편하기야하지만, 물건다운 물건을 고르려면 할 수 없이 시내로 가야하는데, 왕복 1시간 거리가 선뜻 마음에 내키지 않는다. 오늘은 호기심에 한 번 내비게이션 지도를 회전이 아니라 고정 모드에 놓아봤다. 그냥 호기심으로. 그런데, 이게 웬일. 여태까진 그냥 대충 북쪽으로 가는 줄 알았었는데, 동으로 갔다 서로 갔다 정말 꼬불꼬불 정신이 없다.
차 타고 갈 때 길이 있듯이 산을 오를 때 역시 길이 있다. 내 익히 알고 있는 산, 더구나 어차피 꽃 사진 찍으러 벗어나곤 하는 길, 가끔 '지름코스'를 시도해본다. 길 없는 곳으로 차 몰기 상상하기 힘들듯, 길 아닌 곳으로 산 오르기 역시 마찬가지다. 무성한 풀을 헤치고 험한 바위 기어오르느라 찔리고 넘어지고 다치기 부지수.
'지금 나보다 더 행복하게 사는 사람 어디 또 있겠어?' 이 생각이 때로는 순식간에 '내 왜 이 모양으로 살고 있지?'로 바뀌며, '삶이란 무엇이지?' 그 괴로운 후렴구가 시작된다. 귀찮을 때 드는 생각. 아예 헬리콥터로 장 보러가고, 케이블카로 산에 오르면 되잖아. 아니, 장은 왜 보러가고, 산엔 왜 오르지? 그냥 집에 편히 앉아 인터넷으로 주문하고, 남의 사진 그냥 보면 될 것을. 생각이 시작되면 어디까지가 본질이고 어디부터가 유희인지 구별이 힘들어진다.
정말? 천만에! 헬리콥터로 직행하는 사람은 부러울 테고, 케이블카로 오르는 사람은 그저 그럴 테지만, 사진으로 야생화 즐기는 사람에겐 연민을 느낄 텐데? 장 보러 가는 길은 조금만 막혀도 짜증나지만, 산길은 아무리 괴로워도 '이런 게 바로 기쁨과 보람 아니겠어?' 절로 흥이 난다. 야생화? 발견하는 순간의 가슴 떨림, 사진 담을 때의 희열, 그런 것 또 어디서 맛볼 수 있겠나.
장보기와 산과 야생화, 이런 것들이 바로 '삶의 축소판' 아니겠는가. 거기에서 길이란 헤맴 부딪침 타협 그것들의 누적된 결과물이고. 모든이가 같은 곳에서 출발해 같은 곳으로 가는 것도 아니고, 모든이가 철인같은 체력을 가진 것도 아니고, 더구나 길을 같이 걷고 사람들이라 하더라도 그들의 생각 목적 가치관 이런 것들 다 제각각일 텐데. 야생화? 참 한심한 사람 다 보겠네, 보통사람들 아마 거의 다 이렇게 생각할 텐데.
중국어 러시아어 배울 땐 제법 진지했었다. 이제 와서 나에게 여행의 의미는? 음악에 살고 노래에 살고 했던 어린 시절 그때는 '삶 전부'를 걸다시피 했었다. 지금은? 또 바둑에서 등산에서 또 역사에서 철학에서 찾아 헤매던 그 무엇인가 그것들은? 좌우로 흔들흔들 그 정도가 아니라 아예 앞뒤로 덜컹덜컹 출렁출렁 그 취미들이 지금 와서 내 삶에서 갖는 의미는?
직선? 지름길? 지금은 그 근본부터 다른 상황이다. 이전에는 '모든 것'들이 본업의 곁가지라 효율개념이 최상위 개념이었지만, 이제는 '모든 것'들이 본업 그 자리를 차지한다. 그때는 '언젠가는'이라는 접두어가 붙는 '가벼운 몰입'이었지만, 지금은 '마지막 불꽃으로'라는 진지한 수식어가 더 어울릴 본격적 몰입.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는 '지금 이 순간에서의 몰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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