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부터가 도전적이다. 이 ‘도적떼’는 원래 실러가 자기가 자라난 Württemberg의 영주 Karl Eugen의 학정을 고발하는 풍자극으로 ‘고향에는 다시 돌아가지 않을 각오로’ 썼다는데, 이 작품이 발표되자마자 각 도시 무대에서 선풍적 인기를 끌자, 풍자대상 장본인인 영주가 오히려 이 작품의 무대공연을 적극 지원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지면서 더욱 유명해진 작품이다. 물론 나중에 그 내용을 알게 된 영주는 진노했고, 그 후 작품들의 연이은 성공에도 불구하고 실러가 그 어느 곳에서도 편안한 생활을 영위할 수가 없었다고는 하지만.
내용은 이렇다. 영주의 두 아들. 카리스마 넘치지만 반항적 기질이 강한 큰아들 Karl, 열등감에 시기심으로 가득 찬 작은아들 Franz. 학업 길로 떠난 형이 일시적 방탕과 일탈로 아버지의 눈에 나자, 이때가 기회다, 동생은 형이 보낸 편지 대신 자기가 꾸민 내용을 아버지에게 읽어주는 등 계속 간계를 꾸미고, 결국 거기에 넘어간 아버지로부터 완전히 내침을 당한 큰아들은 실의에 빠져있다 도적떼의 두목이 되어버리고, 아버지를 내쫓고 영주의 자리에 오른 동생은 일편단심 형만을 생각하는 Amalia까지 넘보고.... 의적을 꿈꾸는 Karl과 약탈행위 거기에서의 쾌락만을 추구하는 도적무리, 고향을 찾았다 진실을 알게 되는 형, 스스로 목숨을 끊는 악덕 영주 Franz, 하지만 이미 반역의 늪에 들어선 Karl은 Amalia를 자기 손으로 죽이고......
무릎을 치게 할 정도의 무슨 반전이 있는 것도 아니고, 마음을 찡하게 하는 무슨 운율의 대사가 있는 것도 아니고, 워낙 길게 늘어지곤 하는 직설적 설명조의 산문들에 그 분량 또한 만만치 않아, 희곡이 아니라 무슨 장편소설 하나 읽고 난 느낌이다. 집과 학교를 떠난 세상을 접해본 적이 없는 모범생 실러가 기숙사에서 몰래 상상의 나래를 펴며 쓴 작품에서 무슨 큰 문학적 가치를 기대하기 힘들다는 것이 어쩌면 무리라고도 할 수 있겠고. 그렇다고, ‘읽을 가치’가 없다는 그런 뜻은 아니다. 사랑과 의리 또 간계와 배반의 뒤범벅 이야기를 읽는 사이에 ‘고전문학에의 입문’은 저절로 이루어지는 셈이다. 그런 의미에서 부담 없이 읽을 수 있는 ‘재미있는’ 책이기도 하고.
사실 풍자의 대상은 폭군으로 변한 동생 Franz이었지만, 형의 이름에 자신이 그렇게 증오하던 영주의 이름 Karl을 붙인 것은 장난스러운 발상이다. 영주에게 ‘차출되어’ 군사학교에 들어간 실러. 하지만, ‘가난한 군의관’ 아버자를 보며 자란 실러는 영주에 의해 강요된 법학이나 의학에는 별 관심이 없었고, 엄격한 감시를 피해가며 루소 괴테 셰익스피어 등을 읽다가 당시 문예연극계를 휩쓸었던 ‘Sturm und Drang(질풍노도)’ 풍조에 심취되어 이 작품을 쓰게 되었다는데, 18세기 말 그 당시의 독일 상황을 생각한다면 22세 청년 실러의 ‘반체제적’ 용기는 대단했던 셈이다. 그냥 요즘 시각에서 한 번 생각해본다. 그가 대가의 반열에 오른 후, 그때 비로소 이 작품을 썼었더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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