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hur Asher Miller(1915 - 2005)의 작품.
누구나 성공할 수 있다는 꿈의 사회 미국, 하지만 다른 말로 풀어쓰면 실적 없으면 도태된다는 능률제일주의, 그 냉엄한 현실 속에서 사라져가는 인간의 존엄성을 그린 작품이다. 단선적 사회고발의 차원을 벗어나려, 작가는 여기에 주인공 개인의 비극적 씨앗을 심어놓는다. '성공의 법칙'에 대한 왜곡된 이해.
또 한 번의 자살시도에 실패하고 들어오는 주인공. 막이 열리면서부터 시작되는 이 분위기는 막이 내릴 때까지 계속된다. 46년 동안이나 모든 것 바쳐 일 해온 회사, 시장개척자의 공로를 인정받아 사장 아들 이름을 지어줄 정도였던 세일즈맨. 하지만 그 아들이 들어선 이제 이 환갑 넘은 세일즈맨은 정리 대상일 뿐. 사무실 근무를 부탁하는 그에게, 아주 작은 봉급으로도 만족하겠다는 그에게 주어지는 것은 파면이라는 극단조치.
툭하면 터지는 부자간의 갈등. 그 긴장을 어떻게든 늦춰보려는 애쓰는 어머니의 간절한 호소.
“너희 아버지가 위대한 분이라는 건 아니다. Willy Loman은 돈도 많이 벌지 못했고, 이름이 신문에 나본 적도 없지. 하지만, 그 역시 인간이야. 그분에게 지금 무시무시한 일이 일어나고 있어.”
하지만, 아버지와 아들들 사이의 갈등은 사회적 구조와는 상관없이 그릇된 ‘출세 철학’에서 비롯된 것. 언변과 패기, 그것이 모든 것에 우선한다는 생각에, 아이들이 학교물건 훔쳐 와도, 아니 공사장에 가서 나무를 훔쳐오게까지 해가며 용기니 패기니 ‘출세의 비법’을 설파하던 아버지.
가족 이름도 상징적으로 Loman이고 아이들 이름에도 경박스러운 뉘앙스의 Biff와 Happy다. 뇌관은 결국 수학시험에서 건드려졌고, 다급해진 Biff가 도움을 청하러 다급한 마음에 선생님께 어디 부탁 한 번 해달라고 출장 중 아빠에게 달려갔다가 목격하게 되는 아빠와 다른 여자와의 현장에서 폭발. 아들은 위선자 협잡꾼을 외치며 튀어나오고, 인기절정 운동선수였던 Biff는 가는 곳마다 무엇인가 훔치다 쫓겨나고 Happy 역시 허풍에 방탕에 제멋대로 살아가고.
사실 아버지에게도 기회는 있었다. 형 Ben의 모험을 떠나자는 권유. 당시 자신의 실적에 도취되어 그것을 거절했지만, 그 형은 ‘정글로 들어가 몇 년 있다 보니’ 다이아몬드 광산으로 거부가 되었고. 물론 정글이니 다이아몬드니 하는 것은 다 상징적 단어. 기댈 곳 없고 남은 희망도 없는 Willy는 이 형의 환영과 대화를 나누곤 하고, 사람들은 혼잣말 읊어대는 그를 미쳤다고 여기고.
아이들에게 보험금이라도 남겨주려 차를 달려 스스로 목숨을 끊는 Willy. 구름같이 사람들 몰려오리라는 예언과는 달리, 장례식 날 그의 묘지 앞에 서있는 사람은 Linda, 두 아들 그리고 옆집 친구 Charley 뿐.
과거와 현실, 환상과 실제가 동시에 교차되곤 하는 이 연극의 무대 구성이 궁금해진다. 어려울 때 마다 튀어나오는 아이들과 꿈을 그리던 장면들과 형 Ben과의 대화들, 또 아들의 고백을 들을 때의 뒤죽박죽 장면들. 영화가 아닌 연극 무대에서 이 장면들은 어떻게 처리될까.
이 작품이 그렇게 큰 반향을 일으켰던 이유는 어디에 있었을까. 막장에 이르러서도 유아적 정신 상태를 벗어나지 못하는 주인공의 성격이란 개인적 비극에도 불구하고, 탈출구 없는 주인공이 처한 그 상황에 대해서는 관객들이 알게 모르게 자기들 일처럼 친밀감을 느끼고 동정하게 되어서가 아닐까.
여기 이 역극의 장면들을 한 번 대충 정리해본다.
두 개의 커다란 가방을 양손에 들고 지친 모습으로 돌아오는 세일즈맨 Willy. 생각에 잠겨 운전하다 사고 날 뻔 했다는 그의 말. 부인 Linda는 직감적으로 느낀다. 오늘 그가 또 한 번 자살을 시도했다는 것을. 고정적 월급도 없이 판매 커미션만으로 살아가는 그.
그래도 아이들 잘 되기 바라는 마음에, (자기가 떠나기 전에) 진지한 이야기를 들려주려는 Willy, 엄마 된 마음에 그 이야기의 분위기를 맞춰주려는 Linda, 이야기의 초점이 흐려진다는 생각에 남의 말 가로채지 말라며 뭐라 하는 아버지, 엄마를 왜 그런 식으로만 대하냐며 대드는 아들들, 으르렁 으르렁, 너희들 항상 나만 이렇게..... 슬픔에 잠겨 자리를 뜨곤 하는 아버지. 집안 분위기는 언제나 이런 식이다.
사장을 찾아가 내근 직을 부탁하지만, 어차피 해고를 통보하려던 참이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선친 이야기 들먹이며 분을 못이겨 테이블을 내려치던 그는 결국 파면당하고. 이제 보험금이라도 빌려보려 옆집 친구 Charley가 운영하는 회사에 갔다가, 거기서 대심원이 된 그의 아들 Bernard를 만나게 되고, ‘출세의 비결’을 물으며 이야기를 나누던 와중에, 아들 Biff에 관한 그 무엇인가를 느끼게 되는 Willy.
Happy가 마련한 레스토랑에서의 저녁자리. 아버지는 아들들에게 파면당한 사실을 고하고, Biff가 진실을 고백하려는데, 허풍장이 Happy와 그가 끌어들인 여자들로 자리는 난장판 되고. 여기서 무대는 또 과거 회상장면까지 겹쳐 돌아가며 진실 모습이 그려지는데, 그것이 바로 졸업이 틀어진 Biff가 아빠와 어떤 여자의 현장 목격 그 장면. 쓰러져 있던 아버지가 다시 정신을 차리고 일어났을 때 종업원이 전하는 말. 아드님들은 여자들 데리고 나갔다데요.
돌아온 아이들. 분노한 엄마. 이제 진실 된 이야기 한 번쯤은 해봐야하는 것 아니냐 다그치는 아이들. 고무호스를 상위에 올려놓는 아들, 그것이 무엇인지 모르겠다고 시치미 떼는 아버지. 오늘도 사실 만년필 훔치느라 정작 취직 인터뷰 할 사람 얼굴도 보지 못했고, 또 지난 석 달도 교도소 안에 있었다고, 이젠 자기도 아버지도 이 세상의 쓰레기일 뿐이라고 울부짖으며 아빠의 품에 안겨 흐느끼는 Biff, 이놈이, 이놈이 내게 안겨 울었어. 감격해 하며 밖에 나가서 달리고 싶다는 Willy. 급하게 떠나는 자동차 소리. 그 소리 이어받은 첼로의 장송곡 선율.
장례식 날 그의 묘지 앞에 서있는 사람은 Linda, 두 아들 그리고 옆집 친구 Charley뿐.
이제 집의 월부금 내는 일도 다 끝난 마당에 정작 집에 살 사람은 가고 없다고 슬퍼하는 Lind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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