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읽기

Patricia Fara의 '편집된 과학의 역사'

뚝틀이 2011. 2. 15. 19:21

세계사 철학사 미술사 문화사 심지어는 경제사 쪽의 좋은 책을 만날 때마다, 과학사 쪽에도 이런 책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하곤 했었다. 물론, 특정 분야나 몇몇 과학자에 초점을 맞춘 이야기책은 몇 권 읽은 적이 있지만, 인류문화와 문명의 발달이라는 큰 흐름 속에서의 전체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그런 책 말이다. 이번에 이 책을 읽으면서 과학사 쪽에도 좋은 책이 나올 가능성은 있구나 하는 것을 확인하게 된 것이 소득이라면 소득.

 

책은 일곱 개의 파트로, 기원-상호작용-실험-제도적장치-법칙-눈에보이지않는것들-결론으로, 나뉘어 있다. 파트의 제목이 그렇다고 이들 테마의 관점에서 과학을 논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인류의 지식탐구 역사를 단계별로 나누다보니 시대별 특징으로 이런 특징적 단어들을 내 세울 수 있겠다 그런 의미다. (기원) 옛날 옛적 그때의 철학과 종교의식 거기에서의 미신과 과학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 것인지로 부터 시작해, (상호작용)십자군 전쟁과 그 후 교역을 통해 흘러들어온 아랍문명이 어떤 형태로 유럽을 다시 깨웠는지, (실험)흔히 중세를 암흑기라 하지만 사실 영웅이 없을 뿐이었지 농기구 개량이라든가 연금술과 관련해 그 무엇인가가 꾸준히 이루어지고 있었는데, 뭐 이런 식으로, 우리가 알고 있는 과학자들의 모습과 시대상황이 어울리며 이야기가 진행된다. 중간 중간에 삽입된 각종 그림과 그에 대한 자세한 설명이 분위기를 한층 부드럽게 한다.

 

책을 덮는 마음이 편치만은 않다. 꼭, 성격 나쁜 누구에게 며칠 동안 붙잡혀 징징거리는 소리를 듣다 드디어 해방된 느낌이다. 과학의 세계에서 얼마나 오랫동안 여성들이 능력을 인정받지 못한 채 착취만 당했는지(한 두 번이라면 글쎄, 하지만 틈날 때마다 불쑥불쑥 튀어나오면 참 괴로운 일), 뉴턴은 사실 연금술사일 뿐이지 별 것 아니었고, 아인슈타인이 보어와의 논쟁에서 패했다느니(한두 명에 대해 그랬다면 그저 양념이겠거니 생각할 수 있겠지만, 누구누구 이야기가 나오는 듯싶더니 '거의 항상' 이런 식이라면 이것 또한 괴로운 일), 과학사라는 큰 흐름에서 어떤 사람의 어떤 일이 그 전체의 틀에서 볼 때 무슨 의미를 갖는지 이런 본질적 이야기는 그냥 나오는 듯싶더니 사라지곤 하는 것이 정말 안타까웠다.

 

궁금하다. 원제 'Science : A 4000 Year History'대로 '과학, 그 4000년 역사'로 책을 냈을 경우와 이렇게 '우리가 미처 몰랐던 편집된 과학의 역사'라고 그 제목을 각색해서 냈을 경우 책의 판매량이 얼마나 차이가 나는지. 영업상 전략과 계산이 어떠했는지 모르지만, 그래도 명색이 과학에 관한 책인데, 그것도 그 내용이 진실의 왜곡이라는 것을 경멸하는 뜻으로 낸 책인데, 그 제목조차 이렇게 뒤틀어 내는 우리 출판계의 현실이 서글프기만 하다. 이런 제목 쥐어틀기도 저자와 합의한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