답답하다. 이유 없이 그저 답답하기만 하다. 일기예보를 눌러보니 설악산은 약간 구름. 나도 모르는 사이에 이미 한계령 쪽으로 차가 달린다. 계곡 입구. 저런. 주차장 입구에 말뚝을 박아 놨다. 무슨 이유지? 숨이 차다. 너무 힘들다. 그래도 바로 이 재미. 숨이 넘어갈듯 배가 끊어질듯. 중간에 꽃 몇이 보이지만, 그냥 통과. 오늘 목표는 산솜다리. 아직은 해가 있는데, 언제 저 구름이... 벌써 몇 해째. 이상하게 여기에 들어서기만 하면 나를 반기는 비. 오늘도 느낌이 심상치 않다. 아직은 내 그림자가 가끔 나타나지만... 쉴 수 있나. 오르자 올라. 드디어 목표 근처. 그런데 또 자신이 없다. 조금 더 올라서든가? 오르고 오르다보니 어느 새 전혀 엉뚱한 곳. 그래도 여기에도 사실 있을 수도 있는 일 아닌가? 하지만.... 다시 내려와 더듬어 옛 기억을 더듬어 드디어 제 코스로. 아니? 또... 찾았다. 드디어 찾았다. 그런데, 저길 어떻게 오르지. 이건 완전히 서커스 수준. 그래도 그 무거운 배낭 포기하지 않고, 결국... 휴~! 있다. 딱 두 송이. 하지만, 자리를 찾기 힘들다. 각도고 구도고 뭐 그런 생각은 다 사치. 왔노라. 보았노라. 찍었노라. 증명 샷. 인증 샷. 뭐 그런 것만이라도 마련할 수 있으면 다행. 그래도.... 발 하나 잘못 디디면 저 밑으로.. 저~ 밑으로. 덜덜 떨며 발 하나를 아래로... 덜덜 후덜덜덜. 이건 무슨 포즈... 어쨌든 찰칵 또 찰칵. 그 와중에 렌즈를 갈아 끼우지 않을 수 없어.... 찰칵 또 찰칵. 드디어, 아니나 다를까. 빗방울 또 빗방울. 이건 거의 전쟁 수준. 목숨을 건 전쟁. 전혀 과장되지 않은 진짜 상황. 휴~. 더 욕심을 내다간... 이제 그만. 한 손에 배낭 한 손에 카메라. 아래를 내려다보니.... 어디를 붙잡고 어디를 딛어야 저 아래로 다시 내려갈 수 있는지. 도대체 올라올 때는 내 무슨 재주를 부린 거지? 믿기지 않는 상황. 정말 어떻게 해야 하지? 혹시나 하고 다른 쪽 내려다봐도 거기는 더 절망적. 이론적 가능성도 없다. 하기야 가능성 없어 보이기는 이쪽도 마찬가지. 단지 내 이곳으로 올라왔다는 사실 그 기억이 유일한 반증. 이럴 때 대비해 배낭에 비상 자일 같은 것 넣고 다니는 건데.... 그런 생각이 무슨 소용. 10분. 아니 적어도 30분 그저 이리 생각 저리 생각. 이것이 바로 삶 아닌가. 삶 전체로 볼 때 전혀 중요하지도 않은 그 어떤 미끼에 이끌려, 그 다음 단계는 전혀 생각도 않고. 신기하게도 올라가는 단계에서는 위험이 보이지 않는 법. 바로 여기를 움켜쥐고 요기를 디디면... 봐 올라설 수 있잖아. 착하지. 참 착하지. 요사스런 기운에 미끼에 홀려 그냥 또 그냥. 시선 유효시선의 거리는 기껏해야 50센티 1미터. 그런데 막상 내려가려니 저 밑 5미터 10미터까지 환히 보이고. 물리의 법칙 마찰계수 vs. 중력법칙. 考慮의 폭과 思考의 깊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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