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온다. 오랜만에. 현관에 의자 내놓고 그냥 멍하니 내다본다. 쓸쓸하다. 서글퍼진다.
텔레비전에서 탁탁 튀는 소리가 난다는 마눌님 불평에 서비스 센터에 전화를 거니 다음 주 월요일에나 서비스맨 시간이 난다고.
하지만, 곧 걸려온 전화. 지금 방문하겠다고. 이 양반, 단골이다. 냉장고 때문에 벌써 몇 번 방문했던 사람이다.
언제나 서글서글한 만능박사. 고개 갸웃거리며 뭔가 몇 번 만지더니 오케이.
Wolfgang Welsch의 Vernuft(理性). 손에 잡은 지 벌써 몇 달째. 떨어뜨리고, 커피 쏟고, 그 흔적 가득한 이 책, 이제 마지막 장을 덮는다. Foucault, Wittgenstein, Deleuze, 그 수많은 사람들, 수많은 생각들. 도대체 뭐가 뭔지.
고등학교 때 생각이 난다. 수학책. 다 그게 그런 것 같아 재미없던 차에 친구가 내민 책에 푹 빠진다. 문제 하나 푸는데 몇 시간 아니 며칠 걸리던 그 문제집. 보던 책 다 덮어두고 거기에만 매달렸었다. 그때는 답이라도 있었지. 아니, 그때는 책을 덮어놓고 생각만으로 시간을 보낼 수 있었지. 하지만, 이번엔 대책이 없다. 이 사람들 생각이 뭔지 어떤 때는 감잡힐 듯 말듯 하다가도 결국은 뒤죽박죽. 불쌍한 현실은 책을 손을 떼면 앞으로 나갈 수 없다는 것.
학위과정 그 때. 남들이 다 하는 그런 방법 따라하는 것이 싫었다. 뜯어내고 잡아당기고. 2차원적 작업이 싫었다. 입체구조로 바꾸어갔다. 모두들 정신 나간 짓이라 비웃었다. 현미경 밑에 보이는 ‘흉터투성이’ 내 작업 한참 들여다보던 연구소장의 말. “특허 하나 내지 그래. 모든 것을 망가뜨리는 방법에 대하여.” 하지만, 거꾸로 뒤집은 그 일이 ‘작품’이 되었을 때, 누구도 무슨 말 하지 못했다. 지금은 누구나 그렇게 한다.
내 인생은 언제나 그랬다. 남들과 똑 같이 사는 것엔 전혀 흥미가 없다. 지금 여기 생활도 마찬가지다. 차가운 공기 쏘이며 밤하늘 올려다보기, 땅바닥에 옷 더럽혀가며 야생화 사진 찍기, 꼴이 말이 아니다. 러시아어 아랍어 등 ‘소용 될 곳도 없는’ 말 배우기, 역사 철학 미술 등 ‘쓸데없는’ 책 읽기.
특히 이번 책, 소득은 全無. 허탈? 그런 것 없다. 그런 적 한 두 번인가. 지난번 ‘러시아 사상가’들 마찬가지고, 아직도 손을 떼지 못하고 있는 차라투스트라 역시 마찬가지다. 역시 형이상학 이쪽은 내게 벅찬 모양이다.
하긴, 어디 철학뿐이랴. 학생시절 그때, 시 쓰는 사람과 대화를 나눌 때, 그 대화보다는 그 사람이 신기해보였었으니.
뚝디 뚝틀이 이 녀석들. 눈치 보기. 처음에는 지나가려는 주인한테 벌떡 일어나 길을 비켜주곤 했다. 이제는? 가만 자기 자리 지키며 고개조차 들지 않고 눈치만 본다. 나 비켜갈 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