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그날 - o

면도

뚝틀이 2012. 1. 30. 20:54

일출사진 찍어볼까 설정해둔 알람에 깨어보니, 동쪽하늘 해 솟아오를 그곳엔 구름이 잔뜩. 여기 머무르는 동안 기회는 얼마든지 올 텐데 뭘. 팔과 목에 온 마비 증세에 아직 울적하지만, 그래도 적어도 마음의 여유는 좀 생긴다. 휴양이라기보다는 피난, 피난생활 이미 나흘째. 의사 이야기대로 하와이쯤 가면 어떨까 생각도 해봤지만.... 여기 통영도 물론 겨울이다. 하지만, 내 사는 산 속 그 ‘추운 겨울’은 아니다. 서울? 전혀 생각이 없다. 여러 생각 끝에 그래도 ‘급한 일’ 생길 때 믿을 만한 곳 가까이 있는 국내가 최선이라는 생각으로 택한 곳이 이곳이다. 앞으로 당분간은 ‘갑작스런 때림’ 걱정 없이 여기 머물 예정. 놀라운 일 하나. 수건과 쓰레기봉투 좀 갖다 달라 전화하니 정문에 있는 안내소까지 와서 받아가야 한단다. 이건 정말 억지다. 인건비 절약하려는 단순한 생각에서 그런 시스템을 만들었는지는 몰라도, 여기가 무슨 수련원도 아니지 않은가. 아니 수련원도 이런 짓은 하지 않는다. 하긴, 비치되어있어야 할 휴지조차 없어서 오늘 길에 사오기도 했지만. 내 듣기로는 여기 사장 이제 암으로 한발 뒤로 물러난 상태라고. 그가 지금 이렇게 돌아가는 꼴 본다면 무슨 생각을 할까. 아니, 아까 설명으론 회장님 지시라던데. 덥수룩한 수염, 미국식으로 salt and pepper라는 표현보다는 우리말 표현인 파뿌리가 오히려 더 어울릴만한 흉측하게 엉킨 긴 머리, 그냥 봐주기 힘들 정도로 때 국물 잔뜩 끼고 낡은데다가 찢어져 너덜너덜한 내 겨울 등산복. 사람들 눈에 역겹게 보이기 최적의 상태지만, 어떤 면에선 그렇게 나를 보는 사람들의 시선을 즐기는 내 악취미. 하지만, 이제 그냥 가위로 잘라내곤 하는 것에도 한계가 온 내 머리. 귀와 목을 긁는 그 머리카락 따가움에 견딜 수 없어, 오늘 결국 할 수 없이 이발소 찾아 나섰지만, 월요일이 쉬는 날인가 열린 곳 한군데도 없다. 할 수 없이 가게에 들려 면도도구 몇 점 사고 미장원에 가서 머리를 다듬고 나니 이제 겨우 ‘사람’ 비슷하게 된 기분이다. 그런데 이게 무슨 일. 면도거품인줄 알고 그냥 집어 들고 온 것이 라이터 가스통. 하는 일이 이런 식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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