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사다운 식사 제대로 한 번 해볼 겸, 또 어제 잘 못 사온 라이터 가스통도 교환할 겸 읍내 하나로마트에 들렸더니 벌써 닫혀있다. 여섯시 조금 넘었을 뿐인데. 아니면 여기 마트는 화요일 휴무인가. 나온 김에 근처 식당에 들렸지만, 손님 있는 식당이 하나도 없다. 빈 식당엔 들어갈 마음 없고, 그렇다고 내 빤히 아는 그 리조트 식당엔 더더구나 마음이 없고. 하긴 이런 내 괴벽은 서울에서도 마찬가지다. 시골생활에서 가장 불편한 점이 그럴듯한 식당이 없는 것이라 불평을 하다가도, 막상 서울집에 차세우고나면 들를 곳 찾아 헤매다 그냥 타코 하나로 채우듯이. 그냥 가게에 들려 냉동물만두 한 봉 사다가 끓여서 저녁으로.
딱히 할 일은 없고, 아직도 책 읽을 마음이 내키질 않아 유튜브 영화 순례를 계속한다. 감시카메라도 없고 휴대전화도 없던 그 시절 자욱한 담배연기 속의 스릴러. 공중전화 박스와 축음기 또 타자기 곁들인 로맨스 장면들. 가장 크게 느껴지는 차이는 음악. 대화가 없는 장면에선 현악기 몇 대로 무성영화 배경음악 나오듯 천편일률적이다가, 서스펜스 장면에서 커지곤 하는 관악기 찢어지는 소리. 내 어렸을 적 나를 사로 잡았던 이 배우들(Rex Harrison 1908-1990, Rock Hudson 1925-1985, David Niven 1910-1983, Audrey Hepburn 1929-1993, Cary Grant 1904-1986, James Coburn 1928-2002, Charlton Heston 1923-2008), 참 묘한 느낌이다. 이 스타들이 지금 내 나이가 되었을 때는 어떻게 지내며 무엇을 생각하고 있었을까.
지금 내 미국사람 만나서 대화한다면? 그 시대의 언어는 그 내용이 어떻든 슬랭도 드물고 표현의 생략도 없는 옥스퍼드 잉글리시. 무의식중에 내 표현 바로 이 영화들의 그 표현들이 술술 나오지는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