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에서 볼 일을 마친 후 직원에게 번거롭겠지만 하나만 더 부탁하자며 계좌이체를 할 구좌번호를 내밀자 이 사람 놀란다.
카카오뱅크? 집안에 ‘젊은이’들이 많은 모양이죠?
중년 후반 분위기의 이 사람, 마치 모욕이나 당한 듯 표정이 약간 일그러진다.
하긴 나도 신기하다. 해킹이 신경쓰여 인터넷뱅킹 그런 것까지 원칙적으로 멀리하던 나였는데 말이다.
물론 내 사는 이 산골 마을엔 카카오톡 그런 것을 권하거나 더구나 카카오뱅크 가입를 권하는 그런 젊은이는 없다.
거의 모든 일상사를 개인비서에게 맡기면 되었던 그런 직장생활 후 제일 힘들었던 것이 바로 인터넷으로 업무 처리하기.
몇 번인가 인터넷뱅킹에 가입하려다 뭐 그렇게 귀찮은 것 입력하기를 많이 요구하는지 ‘힘들어’ 포기하고, 해킹의 위험성을 원천적으로 봉쇄하기 위해 그런 것 안한다고 스스로를 합리화시키고 있던 나였는데 이렇게 젊은이 세계에도 발을 넣고 있으니 말이다.
내 이제 뭐 그렇게 시간에 쫓길 일도 없으니, 읍내에 볼일 보러나갈 때 그때 은행에도 들리곤 했는데, 이제는 상황이 달라졌다.
그 짧은 동안의 운전조차도 힘에 부친다. 위험하다. 그래서 새로 생긴 증상, 이젠 읍내로 갈 일이 생기면 스트레스 쌓이고 짜증이 난다.
바로 이때 떠오른 것이 내 주거래은행과는 다른 곳에 별도의 ‘소액관리’ 구좌를 만드는 것. 교통범칙금이나 동호회회비 납부 또 축의금 송금 등등을 위한 계좌인데, 문자 그대로 소액을 집어넣고 무슨 사고가 나더라도 그 액수 한도 내에서 잃어버리면 그만이지 뭐 그런 생각으로 말이다.
이런 때 마침 매스컴에 계속 오르내리던 뉴스, 카카오뱅크. 가입 과정이 간단하다는 그 광고 문구에 혹 했다.
이것저것 입력 중 저쪽에서 1원인가 100원인가를 입금하며 보낸 문자를 확인하러 읍내 거래은행으로 가야했던 것이 좀 불편했지만,
(참 내 전화는 인터넷이 안 되게 하고 기본요금만 내는지라 와이파이가 없는 곳에서는 먹통이다. 그런데 여기 이 시골에는 그런 편의개념이 통하지 않으니 은행에 가서 통장정리하며 거기 메시지를 확인하고 다시 집으로 돌아와 절차를 계속 진행하야 하니....)
그래도 거의 속전속결, 가입절차는 쉽게 끝났다.
제일 먼저 한 일은 지난 번 받은 범칙금 납부. 읍내로 가지 않고 그저 버튼 몇 번 누르니 해결. 이렇게 편한 것을...
한 주일이 지나니 교통카드 기능을 포함한 것으로 주문한 체크카드도 도착. 서울에서 버스를 탈 때마다 귀찮았는데......
(얼마 전 불쾌한 일을 당하고 난 후라....
항상 마을버스만 타다가 그때 일반버스를 탔는데 요금이 1,200원 인줄 알고 낸 후에 보니 현금승차는 1,300원.
그래 주머니에서 100원짜리 하나 더 꺼내 넣었는데, 이 기사양반 어떤 노인네가 1,000원짜리 집어넣고 100원만 더 넣은 것으로 생각하고 200원 더 넣으시라고 호령조로 훈계. 울컥하는 것을 참고 내 그 생각과정을 설명하느라.... 그 상황을 생각하면 지금도....)
어쨌든 참 편하다. 이렇게 지갑 채 척 갖다 대면 나중에 알아서 요금을 청구하니....
한참 편한 맛에 들려 흐뭇해 있는데 케이뱅크 광고도 눈에 들어온다. KT 통신요금 할인이라....
그쪽에도 가입하려는데, 이런 것을 하늘 땅 차이라고 하던가, 가입과정에서 스피커폰 기능으로 바꿔,
(내 전화기로 스피커폰 기능을 사용하기는 이번이 처음)
주민등록증 사진을 교도소 죄수처럼 들고 카메라 앞에 서서 그쪽 상담원과 통화를 해야하고,
(사람이 늙어지면서 제일로 보기 싫은 것은 자기 모습, 더구나 셀피 모드로 보는 그 시체같은 모습이야...)
또 입력하는 것이 뭐 그렇게 많은지... 몇 번이고 포기하려다 친절한 그쪽 상담원의 설득에
(자기도 처음에는 무척 힘들었단다. 나를 이해한다고....) 결국 가입에 성공.
이제는 새 달이 시작하면 그 통신요금할인 혜택이 나오는 액수까지만 쓰고, (이 카드는 그 액수에 그 통신요금 할인 이외의 혜택이 없다.) 그 후로는 카카오뱅크의 체크카드만 쓴다.
(이런 ‘쫀쫀한’ 모습의 내 꼴을 보며 옆의 생활코디가 한마디 한다. 평생 그렇게 돈 몇 푼에 신경 쓰는 내 모습을 본 적이 없는데....)
그런데 가입하고 보니 또 하나 편한 게 있다.
사실 은행원을 만나는 것이 꼭 즐거운 일만은 아니다. 사람이 살다보면 적금을 깨야하는 그런 일도 있는 법인데,
타행송금 땐 싫은 티를 내지 않으려 애쓰며 묻는 그 직원에게 귀찮은 설명 몇 마디도 곁들여야 하고...
그런데 여기선 그럴 일도 없다. 그저 내가 들고 싶으면 들고 찾고 싶으면 찾으면 된다.
더구나 시중은행과 비교하면 크게 차이나는 금리. 1년 정기예금은 년 2%이요, 잠시만 맡겨도 년 1.2%다.
(그런데 여기에서도 카카오뱅크와 케이뱅크의 큰 차이. 카카오에서는 세이프박스인가 하는 곳에 넣으면 하루만 맡겨도 년 1.2%인데 케이에서는 한 달을 채워야 한다고 하며 앱을 켤 때마다 D-며칠 이 메시지가 뜬다. 관점에 따라서는 그다지 즐거운 일이 아니다.)
말 나온 김에 또 하나. 로그인은 카카오에서는 손가락으로 쓱 패턴을 문지르면 되는데 케이에서는 숫자를 일일이 콕콕 찍어 입력.
작은 차이 같지만, 느낌은 크게 다르다. 케이는 사무적이고 딱딱한 또 하나의 은행인 것 같은 반면 카카오는 꼭 부담 없이 놀이터에 들르는 기분.
두 은행 공통점으로 좋은 점은 포인트 처리.
전에 사용하던 신용카드에 보너스가 쌓이면 귀찮게도 전화가 와, 이 상품은 어떠냐 저 상품은 어떠냐...
쓸데 없는 스팸성 전화. 마땅히 마음에 드는 물건도 없고. 무슨 농간이라도 당하는 느낌이고, 그냥 귀찮아서 다 포기하곤 했다.
그런데 케이도 카카오도 군말없이 캐쉬백, 그냥 입금된다. 포인트가 무엇인지 정말 실감나는 대목이다.
어쨌든 이제 편한 ‘거래은행’이 두 군데나 더 생겼다. 마치 무슨 큰 능력이라도 새로 생긴 기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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