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 되겠다. 오늘도 마찬가지. 집 안에서도 자꾸 쓰러지고 넘어진다.
오늘은 무슨 일이 있어도 분당에 다녀와야겠다고 생각하기 벌써 며칠 째인가.
문안가는 것이 아니라 바로 얼마 후의 내 모습을 보는 일, 생각만 해도 마음이 무거워진다.
어지럽다. 통증은 왜 이리 또 심하지? 화가 난다. 미칠 것 같다. 아니 이러다 어느 순간 팽 끊어질 것 같다.
식탁위에 수북이 쌓인 약봉지. 그 사이에 놓인 박하사탕 하나. 사탕에 손이 간다. 이런 내 모습을 의사가 본다면?
‘얼마 전’까지만 해도 난 의사 볼 일이 없었다. 약방에 갈 일이 있다면 그건 박카스 사러가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제 그것은 ‘오랜 전’의 추억일 뿐이고, 입에 털어 넣는 게 하루에 몇 알이나 되는지.....
이젠 내가 의사다. 아플 때뿐 아니라 아예 아플 것 같으면 미리미리 찾아놓곤 한다.
하긴 의사들 하는 일이란 증상 입력 후 컴퓨터가 뱉어내는 처방전을 건네주기 그것 아닌가.
그래도 매달 뜯기는 ‘엄청난’ 보험액에 비하면 미미한 수준의 의료비, 아직은 다행이라고나 할까.
이 봉지들을 차곡차곡 정리해 선반에 올려놓아야할 때다. 나를 위해 열어놓은, 바로 나에게 맞춰진 나의 약방.
언제부터 내 이렇게 변해버렸지? 그렇게도 죽음 가까이 가고 싶어 하던 내가? 이건 모순 아닌가?
약은 왜 먹는가. 죽음을 피하려? 궁극적으로는 그렇겠지만 실은 통증이 무서워서다.
아프다가 죽는 것은 필연의 과정으로 이해하지만, 통증이란 정말 견디기 힘들다.
끊어지는 듯 덮쳐오곤 하는 통증, 몸속 DNA들이 내게 내리는 명령이다. 생명유지 본능.
위험이 닥칠 때 튀어나오는 반사작용, DNA는 ‘판단’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그저 빠를 뿐이다.
꼭 아파서 죽는 것만은 아니다. 내 죽음의 문턱까지 이른 적이 세 번 있었다. 세 번 다 물과 관련된 일.
중학교 때 캠핑 갔다 맞은 편 바위가 가까이 보여 건방지게 수영해 건너다 도중 다리에 쥐가 나 거의 갔었고,
고등학교 때는 한탄강에서 물놀이 중 급류에 휩쓸려 점점 더 안쪽으로 흘러가다 저 밑에서 나왔고,
‘얼마 전’에는 와이키키에서 방파제까지 갔다 그곳 물 흔들림에 쉬지 못하고 돌아오다 탈진했었다.
재미있는 것은 八象醫學의 권위자라는 권도완박사에게 갔을 때, 1분도 안 돼 나온 진단.
내 木陽체질의 특이점은 물은 相剋, 더운 물 찬 물 상관없이 그렇단다.
하긴 생존본능 DNA의 명령에 강력한 항의를 시도한 적도 있었다.
유학시절, 끔찍이도 견디기 힘들었던 ‘사생활’, 중앙분리대 없는 국도를 달리기 몇 차례.
이번엔 정말.... 하는 결정의 순간, 하지만 그때도 내 몸은 이성에 불복종, DNA의 명령을 따르곤 했다.
이제는 그때와는 전혀 다른 이유, 이번에는 하지만 전혀 다른 상황, 반사작용의 방해를 받지 않는 방법을 택하려했다.
차가운 물은 싫고 엉뚱한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기도 싫고 그렇다고 또 사고로 신문에 오르는 것도 싫고...
어쨌든 도구도 완벽히 만들어 챙기고 미리 몇 차례 확인해둔 그곳으로 세 뚝이를 데리고 향하는데,
뚝틀이 뚝뚝이 이 녀석들, 지진소리를 내는가싶더니 두 물체가 부딪치고 튀고 엉키는 소리,
기운덩어리들이 뿜어내는 에너지, 죽기 살기 혈투. 어느 새 나도 ‘본능적’으로 이 살벌 댄스에 동참,
그러다 발이 꼬이며 빙판에 미끄러지고 추락, 하필이면 얼굴부터 부딪쳐 이가 부러지고 입술이 터지고 또 코피까지...
다시 몸을 추슬러 목줄을 당겨 겨우 겨우 나뭇가지 위로 돌려 매달아 당기려는데, 그래도 포기 않고 물어뜯고....
소리소리 지르며 한 녀석 발로 차 쫓아 보내고... 상황이 대충 정리된 후...
허~, 사실 이건 원래 저 위에서 내게 만들려고 했던 그 모양인데...
혹 이 녀석들 주인의 의도를 알아차리고 합작 쇼를?
또 한 번 빗나간 시도. 팔과 다리 쪽도 여기저기 험하게 찢어지고 피범벅...
터덜터덜 내려오다 마주치는 이장님 또 목사님, 하필이면 이런 때.... 구급차를 부를까요? 그 표정들....
이는 다시 때웠지만, 보기 흉한 굳을 살로 변해 계속 깨물리는 입술 상처, 수술할까 말까 아직도 망설이는 중.
孤獨死. 전원일기 때 친근하게 느껴졌던 인상 좋은 그 배우. 죽은 지 보름이 지나서야 이웃의 악취 신고로 발견되었단다.
자살은 아니고 신장질환이 원인이라는데, 죽음의 순간 누구에게도 도움을 청하지 않았다면, 그것이야 말로 바로 자살에 다름 아닌가?
도움을 청할 때 그 부탁을 들어줄 사람이 없다고 생각된다면 그건 스스로의 죽음이고, 정말로 없다면 그건 이미 객관적인 죽음.
아니, 마지막 순간 움직일 수 없어 또는 의식을 잃어 그랬다면, 그건 오히려 죽음의 형태 중 바람직한 쪽이라 할 수 있다.
고통의 시간은 짧을수록 좋고, 자살을 결행하지 못하는 이유가 바로 이 고통에 대한 공포니 말이다.
강아지와 함께 보냈다는 그녀 말년의 삶, 많은 이들이 자신의 모습을 겹쳐 상상할지도 모를 '장면'이다.
겨울이 성큼성큼 다가선다. 온도계의 눈금과 상관없이 느껴지는 추위, 예년과 다르다. 몸의 반응도 다르다.
무엇이든 스스로 해결해야 하는 시골생활, 매년 반복, 올 겨울에도 또 몇 차례 물 때문에 보일러 때문에 고생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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