뚝 가족

뚝뚝이 가다.

뚝틀이 2021. 10. 30. 07:01

15년 전 가을이었지. 이 솔숲에 집 지을 때 널 데리고 온 때가. 같은 배 다 팔리고 난 후 남은 너를 봉지에 싸들고 온 때가.

 

네 우직한 생김새에 사람들은 널 풍산개라고 하곤 했어, 산책 때 뚝디가 요리조리 요령 피울 때, 그때도 넌 묵묵히 내 뒤만 따르곤 했어, 처음에는 덩치도 작은 뚝디가 전입 순 권리로 네 요구르트를 뺏어가 즐길 때도 꼼짝 못하곤 하더니, 어느 때부턴가 완전히 딴 모습으로 변했지. 난폭, 그 자체. 네게 완전히 제압당해 비명을 내지르곤 하던 뚝디. 다음 해 새로 온 재롱둥이 뚝틀이, 이 녀석도 그저 네 밥이었지. 너희들 싸움 말리려다 엄마는 병원 응급실에 실려 갔었고.

이렇게 얌전한 때도.....  이 사랑은 네가 떠나던 그 순간까지.....

네가 해치운 그 수많은 닭, 목줄이 풀렸다 하면 나서곤 한 이장 집 토종닭 사냥, 몇 차례에 합 스물여섯 마리, 그 후엔 아예 세기를 포기했지. ‘표준시가로 보상하고 그래도 미안함에 인사 차 꾸역꾸역 매상 올려주곤 했던 그 집. 이젠 토종닭 단어 그 자체에도 역겨움을 느끼는 상태. 또 있네, 애기 적 널 괴롭히던 그 발발이를 문자 그대로 잔인하게 해치워, 그 매정한 주인에게 또 역시 표준시가보상.

 

얼마나 잔인하게 물어뜯었는지 뚝틀이 옆구리에 크게 구멍이 뚫려 생사 오갔던 그땐 아예 널 갖다버리려 했어. 아이큐고 이큐고 뭐 그런 건 그저 다 사치였던 널 말이야. 더구나 바로 네 새끼인 뚝호를 그렇게 물어뜯어 보낸 날. 그 아기를 묻고 난 후 한 주일 동안 난 먹을 수도 머실 수도 없었고, 더구나 널 볼 수가 없었어. 결국 소백산 친구네에게 보내버리기로 하고 가던 중 네 엄마라는 작자가 옆에서 하도 슬퍼해 차를 다시 돌렸지. 돌이켜보면 그때 널 보내버렸어야 했어.

 

제주도에서 겨울을 날 때 널 데려갈 수밖에 없었어. 사정상 펜션을 며칠 비우고 호텔에 들어야했을 때, 그 때도 연락이 왔지. 친구 집에 맡겨놓은 네가 다시 그 펜션에 돌아와 있다고. 6km나 떨어진 그 길을 어떻게 찾아왔는지 신기하기만 했지. 주변에 소문 난 넌 그때 영웅이 되었었지. 시험 삼아 해변 덤불에 널 내려놓고 몇 시간 후에 다시 갔을 때도 얌전히 기다리고 있었고. 그 때서야 내 마음이 좀 돌아서게 되었지. 우직한 청년.

이럴 때 보면 무슨 생각엔가 잠겨있는 듯 한데.....

하지만, 그 후 또 토종돼지 세 마리. 마을 사람들이 얼마만큼 악랄해질 수 있는 지 또 한 번 확인할 수 있는 계기였지.

몇 년 후 그날너희 세 마리 다 데리고 산으로 향하다 벌어진 혈투. 그때의 후유증과 흔적.

그래도 뚝뚝아 결국 넌 어쩔 수 없는 내 친구였어. 늙은 몸 이끌며 뚝틀이에 겁내는 초라한 모습이 된 후엔 더욱.

 

지난 일 년 여. 죽음으로 향하는 고통과 무력함이 어떠한지, '엄마'의 헌신적인 보살핌이 무엇인지...

오랫동안 잊지 못할 거야 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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