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읽기

김훈의 '남한산성'

뚝틀이 2009. 1. 1. 19:49
강화도로 ‘도망’갈 시기조차 놓쳐버리고 남한산성에 갇히게 된 인조와 조정의 47일간의 모습. 소설이라는 허구임을 강조하는 작가 김훈의 강조와는 달리 마치 그 ‘불쌍한 군생’들의 사실기록을 읽은 느낌이다. 이미 江山風雨情과 大淸風雲에서 나에게 이미 긍정적 인물로 친숙해져있던 청태조 皇太極. 이번에는 ‘우리 임금’이 그에게 쫓겨 작은 성에 갇혀있다 결국 삼전도에서 세 번의 큰절을 올리면서까지 목숨을 구걸해야만 했던 이 이야기를 읽으며 마음이 한없이 착잡해진다.
 
소설을 읽는 내내, 이 남한산성 이전의 시대가 도대체 어떠했기에 나라가 이 지경에 이르게 되었던가에 대한 울분을 삭이느라 애써야 했다. 소설 속의 김상헌과 최명길 또 인조 사이의 대화가 차라리 '소음'으로 느껴질 정도였다고나 할까. 임진왜란 1592년으로부터 7년간. 정묘호란부터 병자호란까지의 10년간(1627-1636) 그 사이 초토화된 나라를 세우려는 ‘각성’과 '행동'이 정말 없었던 것일까? 광해군은 과연 역사가 기록하고 있는 그 정도로 함량미달의 '군'이었을 뿐인가? 개혁과 반정. 혹 그 시대의 역사가 오늘 이 시점에서도 다신 반복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소설 어느 곳에서도 ‘진정으로’ 백성을 위하는 대화는 나타나지 않는다. 그렇다고 ‘진정한’ 임금의 권위나 인간성이 나타나는 것도 아니다. 대의명분의 사수를 원하는 김상헌과 현실직시를 주장하는 최명길에 대한 작가의 인간적 평가는 어렴풋한 분위기를 나타내는 그 정도로 극히 절제되어 있다. 그저 차분한 관찰기록이라고나 할까. 사실을 전달할 뿐 감정의 흐름은 독자에게 맡기는 것. 이것이 이 소설의 특징이요 작가의 의도다.
 
소설의 첫 부분에 조정을 떠난 백성의 마음이 차분하게 그려진다. 황망히 임금의 뒤를 좇던 김상헌이 얼어붙은 강에 이르러 뱃사공의 안내를 받는 장면. ‘아무 것’도 던져주지 않았던 조정대신들의 행차보다는 한 줌의 쌀이라도 얻을 수 있을까 다음 ‘손님’ 청나라 군대의 길안내 기회를 기다리는 그. 강을 건넌 다음 그의 목을 벤다거나, 나중에 그의 딸을 거둬들일 수밖에 없던 운명을 그리는 것은 이 책이 소설이기에 그런 구성을 끼어넣었을 뿐이다. 주제는 무력이다. 철저히 운명에 맞겨진 가엾은 존재들의 입놀림과 푸념들.
 
누구의 말도 다 옳다. 울부짖는 김상헌도 옳고, 고뇌하는 최명길도 옳고, 또 무력한 임금의 말도 당연히 옳다. 그 누가 옳지 않겠는가. 하지만, 말은 말이고, 현실은 현실. 결국은 가장 밑바닥의 인간들도 쓰기에 부끄러운 단어들을 나열해가며 목숨을 구걸해야만 했던, 아홉 번의 크고 작은 고개 조아림으로 그 굴욕을 견딜 수밖에 없었던 ‘나라의 치욕’이 그 어떤 ‘말’로 덮여질 수 있을까? 오늘의 현실을 '먼 훗날의 김훈'은 어떻게 기록할까.

'책 읽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번스타인의 '황금의 지배'  (0) 2009.01.01
르몽드 '세계사'  (0) 2009.01.01
박완서의 '그 많던 싱아....'와 '그 산이 정말 거기에....'  (0) 2009.01.01
이문열의 '초한지'  (0) 2008.06.26
초한지를 받아놓고  (0) 2008.06.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