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 다른 두 제목으로 출간 되었지만, 그 내용은 하나다. 작가의 자전적 소설.
제1권 ‘그 많던 싱아...’는 작가의 어린 시절 이야기로부터 시작된다. 산이 있고 물이 있는 마을의 모습. ‘양반’ 작가의 집안. 세 살 때 아버지를 여의고, 얼마 되지 않아 자기를 귀여워해주던 할아버지도 풍을 맞게 된 고향에서의 어린 시절. 남편을 여읜 종가 맏며느리를 따라 나선 어린 작가의 서울 행. 변두리 빈민촌에 살면서 자식교육을 위해서는 온갖 편법까지도 마다 않는 엄마의 위선과 가식. 혼돈스런 사상 갈등 속에서의 오빠 가족과 그 엄마. 그저 차분한 옛날 이야기 분위기.
제2권 ‘그 산이 정말...’에서는 전쟁 소용돌이 속에서의 오빠 가족과 엄마가 무력함 속에서 겪는 사상과 이념 갈등 속에 휘말린 운명적 고통. 또 그 전쟁의 결과로 철저히 ‘파괴’된 인간들 사이에서 그저 생존 그 자체를 위해 몸부림치는 그 가족의 모습. 덧 없이 사라져가는 오빠라는 생명. 이성에 눈 뜨는 작가 이야기. 여기에서는 첫 권에서와는 달리, 몇 년의 시차를 두고 쓴 책이라 그런지, 내면에서 일어나는 가치관의 갈등이 좀 더 깊게 다뤄지고 있다.
다른 민족의 지배. 같은 민족끼리의 살육전쟁. 그 엄청남 앞에 어떤 힘도 발휘할 수 없는 미약한 존재. 모든 것이 영으로 돌아간 상태에서의 살아남으려는 몸부림. 가치관? 사상? 더구나 도덕관? 작가 박완서 그 한 사람과 그의 가족 이야기가 아니다. 그 시대 그 상황을 살아야만 했던 그 누구에게라도 다를 수 없었을 것이다. 아니, 어쩌면 한 단계 더 나가, 그 세팅만 다를 뿐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 자신들 모습을 그린 다른 그림 아닐까?
오랜만에 ‘책’을 읽었다는 느낌이다. 아주 편하게, 또 편안한 마음으로. 작가 박완서. 그가 쓴 글 어느 곳에도 어려운 꾸밈이나 장황함이 없다. 간결한 문체와 산뜻한 전개. 이것이 바로 이 작가의 최대강점 아니던가. 이 책의 문체 역시 그 동안은 읽은 그의 단편이나 수필집의 연장선상에 놓였다고나 할까. 그 극한적 상황의 단계 단계에 무슨 현학적 수사가 튀어나올 법도 한데, 그런 것 전혀 없이 그저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이야기와 생각이 얽혀나간다. 잘 알려진 인물들이 실명으로 나오기에 ‘자서전’임이 환기되고 있지, 그렇지 않았다면 그 직설적인 화법의 강도로 보아 그냥 꾸며낸 이야기인 보통의 ‘소설’과 하등 다를 바가 없었을 것이다.
책을 덮으며 생각한다. 자칫 아주 메마른 흐름이 될 수도 있는 소재인데, 어떻게 이렇게 부드럽게 이야기를 풀어나갈 수 있었을까. 그 제목에 ‘싱아’도 들어가고 ‘산’도 들어간 것으로부터 알 수 있듯이 자연을 섞어 넣은 작가의 ‘요리솜씨’덕분 아닐까? 뒷동산의 모습과 개울가의 추억이, 또 그 풀내음과 꽃향기가, 이렇게 자연스럽게 묻어나오는 것은 혹 대자연 그 자신이 작가의 손을 빌어 만든 작품은 아닐까 하는 과장된 생각까지 해본다.
과장? 역시, 옥에 티는 있었다. 소설 구성의 문제가 아닌 작가 자신의 성격적 한계라고나 할까? 계속되는 ‘난 아냐.’와 ‘난 싫었어.’ 성격의 주장은 좀 거북스러웠다. 작가인 주인공과 함께 한참 진지하게 이야기 속으로 묻혀 들어가고 있다가, 갑자기 멋쩍게 튕겨져 나오곤 하는 그런 느낌이라고나 할까? 소설이 아니라 ‘해명을 곁들인 자기 소개서’를 읽는 것 같은 그런 느낌 말이다. 혹 나의 책 읽는 자세의 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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