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잘못 샀다. 르몽드가 대표하는 프랑스인의 관점에서 쓴 世界史책인 줄 알고 샀는데, 전혀 그게 아니었다. 책 어디에도 한자가 나타나지 않지만, 세계 곳곳의 時事문제를 다룬 것이니 世界事가 옳은 표기라 하겠다.
Le Monde지의 자매지로 시사문제를 다루는 주간지인 Le Monde Diplomatique가 펴낸 책이다. 지구환경문제, 테러의 지정학적 성격, 세계화의 슬로건 밑에서 벌어지는 불평등문제, 패권주의의 만남이 일으키는 분쟁, 아시아의 부상과 새로운 세계판도, 책은 이렇게 5부분으로 나뉜다. 책이라기보다는 펼쳐든 왼쪽과 오른쪽 페이지가 한 테마를 다루는 단위세트로서 눈에 들어오게 만든 그림 시사지라고나 할까.
전화위복. 내 인생의 표어 아닌가. 내 사전에 잘못된 길 잘못된 상황이란 것은 없다. 단지 내가 계획하지 않았던 것일 뿐이다. 이번 역시 그랬다. 편식의 독서습관에서 벗어날 좋은 기회. 그저 피상적으로 상식적으로 알고 있던 일들에 대해 깊이 있는 설명에 접할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짧은 대신 군소리 없이 정곡을 찌르는 요체설명 방식이다. 세계 각지의 문제를 독립적인 주제로 다루는 듯 보이지만, 그림 전체의 흐름이 느껴진다.
세계 도처에서의 헤게모니 다툼, 문명의 충돌, 종족간의 갈등의 바탕에 깔린 문제가 무엇인지, 세계화와 자유무역이라는 그럴 듯한 포장에 가려진 국가간 경쟁 또 개인간 경쟁의 실상과 피해자에 대한 ‘객관적 관찰’이 마음에 와 닿는다. 중국의 입장에서 본, 인도의 입장, 일본의 입장에서 본 세계, 북핵문제의 근원과 그 필연적 전개과정 역시 고개가 끄덕여지게 만든다. 또 이 책은 우리 언론에서 쉽게 접할 수 없었던 중동문제, 체첸, 알바니아, 키프로스, 아프리카의 각 지역, 콜롬비아 등 지구상 곳곳의 문제를 다루고 있어, 좁은 시야를 넓힐 수 있는 좋은 기회를 제공한다.
이번엔 관성에 따라 책장을 차례로 넘기며 읽었다. 하지만, 사실 이 책은 일종의 時事해설 모음집이란 그 성격 덕분에, 손가는 대로 어디를 펼쳐 읽기 시작해도 어떤 순서로 읽어도 그대로 좋다. 책상 앞에 꽂아 놓고 그때그때 궁금한 곳 찾아 읽어도 물론 좋고. 하긴 이런 값의 책을 그저 일회성 업그레이드용으로 읽었다고 스스로 위로하기엔 너무 아깝지 않은가.
'책 읽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이정명의 '바람의 화원' (0) | 2009.01.01 |
---|---|
번스타인의 '황금의 지배' (0) | 2009.01.01 |
박완서의 '그 많던 싱아....'와 '그 산이 정말 거기에....' (0) | 2009.01.01 |
김훈의 '남한산성' (0) | 2009.01.01 |
이문열의 '초한지' (0) | 2008.06.2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