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역자 이채련. 이 책을 돋보이게 한 사람이다. 원작자와 같은 파리의 하늘밑에 살면서 그 곳 분위기가 생생하게 드러나도록 번역을 했다는 면도 있겠지만, 사실 나의 마음을 사로잡은 또 하나의 요인은 책 곳곳을 수놓은 그의 삽화였다. 마치 한 손은 이야기에 또 다른 한 손은 삽화에, 이렇게 양손이 잡아끌리는 듯 그런 좀 색다른 경험. 그 그림들이 본문의 무대인 파리보다는 오히려 지중해 분위기에 가까운 그런 스타일인데도 말이다. 굳이 합리화를 시키자면, 원작자 아크바르 눈에 비친 세상모습이었다고나 할까. 아니면, 원래 서양화를 전공한 그의 마술 같은 솜씨 때문이었을까?
자전적 소설이라기보다는 수필에 가까운 분위기다. 무슨 심오한 철학이나 문학적 가치가 있는 표현이 담겨 있는 것도 아닌 신변 이야기다. 본인에게는 격랑과 같은 시절이었지만, 오페라, 소설, 또 수많은 영화의 소재로 다루어지는 그런 어릿광대의 슬픔이 이 수필에 깔려있다. ‘호외요 호외. 다이애나 비가 살아있습니다.’ ‘호외요 호외. 부시가 이슬람으로 개종했습니다.’ 이 익살스런 외침은 그가 자기 옆구리에 낀 그 두툼한 신문뭉치를 팔기 위해 고안해낸 유머에 다름 아니다. 한 구역에서 30년이란 세월동안 변함없이 이런 유머를 외치며 달리는 그가 신문사 편집장의 관심을 끌었다는 것이, 또 그래서 그의 이야기가 이런 수필로 세상에 알려졌다는 것이 남들과 달랐다.
‘유명인사’의 이야기는 그 ‘선입관’ 덕에 그 책을 손에 잡는 사람들의 긍정적 이해를 끌어내게 되어있다. 여권 하나 손에 들고 무작정 유럽으로 떠난 그 파키스탄의 시골마을 소년의 희망노래집이다. 어디 이런 이야기가 한 둘이랴. 아니 그보다 더한, 가슴이 아려오게 만드는 그런 이민자의 이야기야 얼마나 많겠는가. 이 수필의 강점은 스토리 전개가 아니다. 어려운 시절 이야기를 들려주는 그의 차분한 마음씨다. 비록 때로는 이해가 되지 않고, 때로는 억울하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삶의 기복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고, 모욕을 주는 상대자를 원망하는 대신 밝은 면 그 무엇인가를 찾아보려는 그의 순수한 마음씨다. 겉으로 드러난 모습이야 어떻건 그의 책 제목(Je fais rire le monde... mais le monde me fait pleurer)이 이야기하듯 자신을 울리는 세상에 웃음을 지어보이는 그런 이야기.
더 편하고 더 가능성이 많은 나라를 찾아오는 이민자와 외국노동자, 그들을 대하는 독선과 경멸. 어느덧 우리나라에도 이런 아크바르와 같은 작가나 이런 수필집이 나올 그런 단계가 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에 마음이 씁쓸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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