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읽기

Cormac McCarthy의 'the Road'

뚝틀이 2009. 2. 23. 08:45

‘그날이 오면’이란 영화가 있었다. 이 책은 그 반대편 ‘그날이 지난 다음’에 해당한다.

그날이 어찌 되었는지 그 부분은 없다. 하늘은 언제나 뿌옇고 땅위엔 재 먼지만 흩날린다.

비가 오고 눈이 내려도 역시 잿빛일 뿐이다. 한밤중엔 바위가 갈라지는 소리가 들릴 정도로 춥다.

물론 나무들도 다 타버렸고, 살아남은 동물들 그림자도 없고, 새소리 하나 들리지 않는다.

가끔 유령처럼 나타나는 존재는 오직 인간들뿐.

이 재앙이 오기 전 인간들이 마련해두었던 버려진 집과 상점을 헤집고 먹이를 찾아다니는,

그러다 때로는 차마 손댈 수 없는 끔찍한 그것까지도 먹을 수밖에 없게 된, 그런 인간들.

 

아버지와 아들은 길을 따라 걷는다. 저 멀리 해변에 도착하면 그곳은 좀 더 나은 무엇이 있으리라는 희망을 안고.

먹을 것 싣고, 비를 피할 덮개 실은 카트하나 끌고서.

비가와도, 추위가 견디기 힘들어도 건물 쪽으로는 갈 수가 없다. 누군가 나타난다면 무슨 일을 당할지도 모르니.

그들이 의지하는 것은 자신들에게는 그 끔찍한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지켜줄 권총 한 자루뿐.

틈날 때마다 아빠는 아들에게 이른다. 우리는 good guy니 bad guy들을 조심해야 한다고.

버려짐 속의 외로움. 그들의 대화는 언제나 돌고 도는 테이프다.

Did you have any friends?

Yes, I did.

Lots of them?

Yes.

 

그토록 원하던 바닷가에 도달하지만, 이곳이라고 다를 것 없다. 포스트 아포칼립스의 처절함이다. 이제 그 어떤 희망도 사라졌다.

잠깐 사이에 그들의 전 재산인 그 카트를 누군가가 가져가고, 그를 추격하고, 후환을 줄이려 그의 옷까지 벗겨놓아 쫓아오지 못하게 만든다.

아들이 묻는다. Are we still the good guys?

아빠는 대답한다. Yes, We're still the good guys.

다리에 상처를 입은 아빠의 상태는 점점 위중해진다.

결국 아빠는 떠나고, 낯선 아저씨가 다가온다. 자기와 같이 가지 않겠냐고. 그에게는 딸이 하나 있단다.

종족이 끊어지지 않을 수도 있다는 희망을 남겨두는 듯하지만, 암울한 모습으로 이야기가 사라진다.

꼭 해피엔딩일 필요야 없지 않은가.

 

비록 내가 택해서 손에 잡은 책이지만, 후회까지 생긴다. 이렇게 어려운 이때에 이런 숨 막히도록 답답해지는 이야기를 읽고 있다니.

단순한 몇 마디 대화들이 섞여들지만, 그것들이 오히려 분위기를 더 고조시킨다.

가끔씩 책을 놓고 밖에 나가 몇 걸음이라도 걸어야한다.

하지만, 그 스토리와는 달리 McCarthy의 문장은 시처럼 흐른다.

대화를 표시하는 따옴표 그런 것도 쓰지 않고, 구독점이니 뭐 그런 것도 때로는 귀찮아 그냥 지나쳐버린다.

그러기에 페이지에 공간이 더 많아졌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단순함이 불러일으키는 극도의 긴장감.

오랜만에 읽은 좋은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