섞어찌개의 맛. 이것저것 적당히 섞어 넣은 그런 '마구찌개'가 아니라, 프로 맛이 듬뿍 배어있는 그런 섞어찌개.
책의 초반은 어린 시절의 온갖 역경을 이겨내며 작가로 성장해가는 주인공 다비드 마르틴의 모습을 1920년대 스페인의 시대적 상황묘사를 곁들여 차분하게 그려나간다. 마치 '시네마천국' 분위기라고나 할까. 나락으로 떨어져가는 그 주인공이 뱉어내는 말들에서 바로 얼마 전에 읽었던 박상우의 '작가' 내용이 다른 톤으로 울리는 것을 듣는 듯 같기도 하고. 책 중반, 베일 속 후견인의 편지가 몇 번 모습을 드러내더니 분위기는 서서히 '아마데우스'로 바뀌고, 책 후반에 들어서자 탐정소설인지 공포괴기소설인지 구별이 가지 않는 판타지 추리소설로 변해버리고, 그 두꺼운 800쪽 책의 마지막 페이지에 이르기까지 긴장감이 더해만 간다. Edgar Allan Poe로부터 Stephen King까지의 온갖 스타일을 '성공적'으로 믹스시킨 그런 작품이라고나 할까.
깊이? 문학적 가치? 예외적으로, 이 책에서는 그런 것 따질 마음 전혀 없다. 영화 한 편 즐기고 나서, 무슨 철학이나 메시지 그런 것 따질 필요 없이, 그냥 재미있었다는 흐뭇한 표정으로 다시 밝아지는 홀을 떠나는 그런 식으로 말이다.
이 별난 섞어찌개의 맛에 반해 다음 접시 'The Shadow of the wind'를 망설임 없이 주문해 놓았다.
(왜, 어차피 번역은 마찬가지 번역인데 영어책이냐고? 두 가지 이유에서다.
우선, 불행한 이야기지만, 이 책의 번역은 너무 실망스러운 수준이다. 역자 약력은 프로지만, 어쨌든 그 결과물로만 판단하자면, 단어선택부터 문장의 기본구성에 이르기까지, 아마추어 그것도 아주 초보적 아마추어 수준을 벗어나지 못했다. 성의가 없었을까, 그렇지 않으면 다른 일로 너무 바빴을까. 전혀 의사전달을 위한 표현이 될 수 없는 문장들이 불쑥불쑥 튀어 나오고, 더구나 자동체크 소프트웨어들이 널려있는 지금 이 시대에 그 많은 오타들은 웬 말인가.
두 번째 이유. 번역본은 '글자크기인플레이션 기법'으로 두 권으로 나왔지만, 영어책은 단 한 권으로 되어있어 어차피 지갑에서 나와야하는 액수는 마찬가지이기 때문. 지금 이 세태에 출판사들에 양심 이야기하는 것이 무슨 소용 있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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