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 때 사진 찍기를 취미로 삼아볼까하는 마음을 가졌었지만, 사진 뽑는 비용 그것이 너무 부담이 되고 또 몇 장 겨우 건진 사진들에 내게 이런 쪽 재능이 있을 리 없지 하며 일찌기 그 생각을 접고 말았다. 그랬었다. 지금도 내 장 한 구석에 놓여있는 그 기계식 카메라와 닳고 닳은 케이스를 보면서 유난히 예능쪽에 열등감이 심했던 그 당시 내 모습과 정말 각박했던 경제상황 이런 것들이 떠오르며 쓴 웃음이 나오곤 한다. 하지만 열등감이란 것이 무엇인가. 내가 원하는 그쪽에 내 능력이 미치지 못함을 안타까워하는 것이 그 근본 원인이라면, 내 '원하는 그쪽'이라는 생각이라도 할 수 있다는 그 자체가 이미 남보다 더 나은 것 아닌가. 열등감이란 의욕의 다른 면. 우연한 기회에 디지털 카메라라는 것이 손에 들어오게 되었고, 그 사이에 일어난 디지털시대라는 엄청난 변화를 실감한다. 다시 학생시절. 논문을 정리하며 타자기를 살까말까 고민하다가 한 페이지 찍는 데 얼마씩 주기로하고 IBM 볼 타자기로 찍어 받던 그 시절. 한 페이지를 새로 찍게 되면, 중간에 다른 내용을 삽입하거나 페이지 일부를 고치게 되면 또 다시 찍어야하는 그 수고에 추가 수당, 거기에 종이 값. 원고 한 페이지 넘기기 전에 생각에 생각을 거듭하며 그 내용을 '완벽'하게 정리하는 것이 중요했던 그 시절이 지나자 어느 사이엔가 워드프로세서라는 것이 퍼지게 되었고, 이젠 글 쓰기 전에 생각하는 미련한 고통 대신 일단 두드려놓고 그 다음에 생각이 바뀔 때마다 그 내용을 고쳐가는 새로운 '문화'가 자연스럽게 형성되면서 내 얼마나 상실감을 느꼈었던가. 이 디지털카메라도 마찬가지. 꽃을 보면 무조건 눌러대고 나중에 모니터를 보며 버릴 것 버리는 그런 식. 이 버려지는 사진들이 아직 필름이요 거기에 현상 인화비가 들어간다고 생각하면? 현대문명이라는 것이 효율성을 높인다고 이야기들 하지만, 사실 곰곰이 생각하면 요즘 이 문화는 사전에 생각하고 준비하는 과정이 생략된 대신, '후회를 교정할 수 있도록 충분히 낭비'할 것을 강요하는 이런 분위기는 사실 '급소를 노리는 대신 우선 주먹부터 마구 휘둘러대고보는 태권도' 식으로 사람을 더 정신없게 만들고 쓸데없는 에너지를 쓰도록 하면서 '사전 스트레스'를 '사후 스트레스'로 그 순서만 바꾸어 놓은 눈가리고 아웅 식의 변화 그뿐 아닐까? 준비생각은 없었더라도 적어도 생각을 수반하는 움직임, 그것도 아닌 이 '무조건 움직여대기' 문화. 처음엔 신기해서 꽃을 찍었었다. 이 꽃도 봤고, 꽃술이 이렇게 생겼다는 것도 알게 되고 하는 식의 지식습득 차원에서의 야생화 찍기. 처음에는 자동모드가 편했다. 그냥 렌즈를 통해 꽃이 보이고 초점이 맞춰졌다고 삑삑 소리가 나면 찰칵 찰칵. 렌즈를 통해 보이는 새로운 세상을 발견하는 기쁨이라고나 할까? 그 엄청난 메모리카드의 용량에 겁낼 것 없었다. 그러다가 어느 때부터인가 뭔가 그냥 '머리에 든 생각 없이 연신 주먹만 휘둘러대는' 내 이 방법에 회의를 느끼기 시작했고, 그래서 접사전용 마크로렌즈를 집중적으로 쓰며 구도니 아웃포커싱이니 하는 '테크닉'에 심취되며 초점심도를 갖고 놀기 시작했고..... 요즘 들어와 부쩍 늘어난 아름다움이 무엇인가 그 의미에 대한 생각. 꽃이라는 자연의 신비함 그것에 빠져 그 꽃의 존재가 화면의 중심이 되는 그런 사진 찍기에서 벗어나, 주위와 어떻게 조화를 이루어야 그 꽃의 아름다움에 '분위기'가 실릴까 하는 그런 쪽에 신경을 쓰면서..... 물론 생각처럼 쉬운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이렇게 생각한다면? 우리 아이가 예쁘다. 그래서 사진을 찍는다. 그러면 앨범에 모이는 사진은 거의 모두 얼굴 사진. 웃고, 찡그리고, 울상을 짓고 뭐 그런 식의 표정사진. 좀 더 지나서 이제 우리 아이가 귀엽게 노는 모습을 찍어야지 생각하게 되면, 놀이터의 모습 어울리는 친구들의 모습같은 주변 묘사가 화면에 끼어들면서 '주인공' 우리 아이를 돋보이게 하고..... 좀 더 지나면, 우리 아이가 자라는 환경 또는 무슨 분위기 뭐 그런 것도 기록에 남기고 싶은 마음에 비록 주인공은 여전히 우리아이지만 그렇다고 그 주인공이 화면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것이 아니라 '이런 곳'이 우리 아이와 '관련'되었다는 그런 식의 기록에 관심을 갖게되고, 그런 식으로 진행하다보면 어는 영화의 멋진 한 장면처럼 주인공이 작게 '처리'되어 있기에 그 화면이 더욱 멋있어지는 그런 단계가..... 물론 많은 생각과 연습 또 실제 체험이 필요하겠지. 생각이 우선. 머릿속에 미리 그림을 그려보고, 지금 내가 무엇을 표현하려는지 분명한 목적의식을 갖고. 당장 몰라보게 무슨 변화나 발전이 없다고 스트레스까지 느낄 필요야 있겠는가. 그저 내 사진의 전체적인 분위기가 그쪽 방향으로 가고 있다는 것만 느낄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생활의 큰 기쁨이요 활력소가 되는 것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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