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인가 잃었을 때 사람들은 낙담한다. 사소한 물건부터 중요하다고 생각되던 그 무엇까지. 무엇인가 크게 잃었을 때 사람들은 좌절한다. 생의 의미라고 생각되는 일까지. 더구나 잃기 전에는 그 가치를 몰랐던 그런 것.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희망을 잃었을 때, 삶 그 자체의 의미를 잃었다고 생각 될 때. 책에서 많이 잃는 이야기, 주변에서 보고 듣는 이야기. 낙담하고 좌절헸던 많은 사람들이 '이전보다 더 행복해 졌다'는 이야기. 실제로도 그럴까? 자신에 대한 실망을 이기려 적당한 이론을 찾고 스스로에게 최면을 거는 것은 아니고? 합리화. 자기 마음의 실제상태를 남에게 들어내기 싫어, 무의식 중에 형성되는 '보호무기'는 아닐까? 자신 스스로도 속아넘어갈 정도로 잘 다듬어진 '정교한 이론'. 그런 이론들이 모이고 모여 '엄청난 인간적 배신'을 겪은 사람들이, '청천벽력같은 불운의 번개'에 맞아 '정상적인 삶'이 불가능하게 된 사람들이, '큰 사업'에 망한 사람들이, 이유야 어쨌든 '객관적으로 볼 때 그런 삶에 무슨 의미가 있을까' 그런 상태에 빠졌던 사람들이, 이런 패배자 실패자 낙오자들의 무리 속 이야기들이 모여 봇물을 이루어내는 '행복론'. 지금까지는 그렇게 생각했었다. 그렇다고 생각해왔었다. 하지만, 나 자신이 그 그룹에 속하게 되고, 이제 어느 정도의 시간이 흐른 후, 느끼는 이 감정. 다시 필연적 전화위복의 이론으로. 하지만, 이번에는 자기합리화를 위한 견강부회적 이론이 아니라, 객관적 시각에서의 진실관찰. 화라는 것은 '자기가 꿈꾸며 원하던 길'에서 벗어나게 된다는 것이고, 이것은 '자기가 이제까지 몰랐던' 새로운 세계로의 '신분과 인식 이전'. 비록 그런 '이전'이 이루어진다 하더라도 '상처' 그 자체는 없어지지 않고 마음 속 깊은 곳에 남아있게 되고. 하지만, 시간이 지남에 따라 그 '상처'는 '고통'의 상태에서 '아련한 추억'이라는 하지만 아주 강하게 작용하는 제2의 본능으로 변하게 되고, 이것이 바로 '냉정한 자기 판단'과 '누구의 영향도 받지않는 신중함'이라는 '성숙된 인간 모습'의 바탕이 되고. 더 중요한 것은 그런 '소화과정'을 거치는 동안 세상보는 눈이 달라지고, 또 실제로 접하게 되는 '다른 세상'의 모습에서도 무엇인가 '매력적'인 것이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되고. 그래서 '제2의 인생'은 '저 먼' 기억 속의 제1의 인생이라는 '전생'과 상관이 있을 수도 있지만 그래도 상관이 없다고 생각하는 쪽으로 기울게 되는 '독립적인 또 다른 제1인생'이 되고. 어쨌든 확실한 것은 하나. 이 세상 살아가는 동안 일방적으로 얻기만하는 게임이 가능할 수 없듯이, 어떤 삶도 일방적으로 잃기만하는 그런 게임은 아니라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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