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하나의 죽음. 자살에 대한 생각 한 번 해보지 않고 살아가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어쩌면, 구체적 실행단계까지 갔다가 마지막 순간 본능이란 힘에 굴복한 사람 수보다 훨씬 더 적은 것을 아닐까? 더 이상 이 세상을 살아갈 필요가 없다는 생각에 삶을 스스로 마감하는 것 그것은 개인의 판단이다. 거기에 어떠한 잣대를 갖다 들이댄다 하더라도 그건 무의한 일일 뿐이고, 따라서 죽음에 대한 생각 그 어떤 면을 논하는 것 역시 무의미한 일이다. 삶. 아직 죽음에 이르지 않은 것을 삶이라 하는 것이 사전적 정의일지는 몰라도 내 생각은 다르다. 무엇을 하려고 할 때 아직 그것을 죽음이란 종말 시점과 결부시켜 생각하지 않는 단계. 그것이 내가 정의하는 삶이다. 내 거기에 가고, 내 그것을 하고, 그런 것이 '지금의 나'에게 무슨 의미가 있겠나하는 식으로 자포자기의 심정으로 살아간다면 그것은 단지 삶의 연장일 뿐 더 이상 진정한 의미에서의 삶의 영역에 속하지 않는다는 그런 생각 말이다. 재미삼아, 삶의 방식을 축구에 대한 한중일의 입장이랄까 단계랄까 거기에 한 번 대입해본다. 나중에는 네 가지 입장으로 늘이겠지만, 우선은 세 가지 유형을 생각할 수 있다. 우선 중국. 이상하게 내겐 운이 없는지 결정적인 순간마다 삐끗거리는 바람에 이제 저 한국과 일본의 플레이나 구경하고 있는 신세지만, 단언 컨데, 저들보다 훨씬 더 나은 플레이를 하는 날 언젠가 그날이 틀림없이 올 것이다 이런 식의 생각으로 또 그 자신감으로 살아가는 유형이요 입장이다. 두 번째는 일본에 해당하는 것으로, 지금 세상 돌아가는 것 가만히 관찰해보니 내 실력으로는 아직 어림없고, 그렇다고 그냥 마냥 주저앉아있을 생각은 물론 전혀 없고, 그래서 생각해보니 방법은 오직 하나. 내 자신 엄하게 다스리며 남에게 당하지 않는데 최선을 다 하다가 어느 땐가 기회가 오면 무서운 힘으로 그 가능성을 움켜잡는 것. 나름대로의 원칙을 세워놓고 그런 날을 기다리며 자신만의 '美學'을 따르는 이런 유형은 자칫 쓸데없는 옹고집이 쟁이 또는 현실과 동떨어진 꿈이나 꾸는 몽상가 취급을 받는 불쌍한 존재로 보일 수 있지만, 그래도 이런 삶의 방식에는 그 나름대로의 강점이 있다. '세상은 세상, 나는 나'의 강인함이 바로 그것이다. 이제 세 번째 유형은 바로 우리 한국식의 '자신감 충만 주의'. 열심히만 한다면 그 무엇을 못해내겠나 하는 자신감으로 일단 뛰고 보는 것. 움직이는 만큼 그 효과면적(effective cross-section)이 넓어지고, 그만큼 생각지도 못했던 경우의 수를 실제로 접하고 경험하며 또 그 과정에서 잘못된 것은 고쳐나가고. 계속 목표를 새로 잡아나가는 이런 moving target 추구 형이, 손이 안으로 굽어서 그럴지는 몰라도, 내 생각에는 쓸데없는 고민을 털어버리며 앞으로 나가는 데는 최상의 방법이다. 이제 생각을 반대방향으로부터 접근시키며, 죽음 특히 자신의 삶을 스스로 끊어버리는 자살이라는 관점에 이 세 가지 유형 삶을 대입해 본다. 무슨 이유에서든 아직까지는 운이 닿지 않았지만 언젠가는 때가 오리라는 믿음을 가진 첫 번째 경우엔 죽음을 생각할 필요가 없다. 너무나 당연하게 그렇다. 얼핏 생각에 시간이 흐르고 흘러도 할 수 없다면 생각이 달라지며 패배주의에 젖어들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 수도 있지만, 사실, 역설적으로 막연한 희망이라는 힘이 시간이 지날수록 얼마나 더 탄탄하게 자리를 잡게 되는지 경험이 말해주고 있지 않은가. 이제 두 번째의 경우. 여기엔 문제가 생길 수 있다. 자신의 생각이 옳을 수밖에 없다는 그 옹고집 신념이 사실은 한갓 헛된 몽상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의 그 심정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비참해 질 것이다. 여기까지가 내 태생적 한계이고 내 이 이상 나가는 것은 글쎄 꿈에서나 가능할까 이런 생각이 들면서 갑자기 모든 것이 헛되고 헛되도다 느껴진다면 그 얼마나 비참한 모양이 될까. 자포자기. 하지만, 이 자포자기엔, 이미 꾸준한 습관으로 삶의 일부가 되어버린 '성실성'이란 나름대로의 장점이 살아 숨 쉬고 있다. 그렇다면, 세 번째 유형에서는? 도전, 임기응변, 온갖 노력, 그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어느 날 갑자기, 역시 여기까지가 내 태생적 한계이고 더 이상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그런 인식에 갑자기 도달하게 된다면? 돌이켜보니 내 지금까지 살아온 것이 무슨 美學도 아니고 내 정말 기본에 충실하며 성실하게 살아왔는가하는 회의도 들고, 여태까지의 모든 것이 그저 뒤죽박죽 중구난방이었다는 생각이 들 때 그때의 난감함은? 이제 여기서 생각을 한 단계 더 진전시켜 네 번째의 유형을 도입해본다. 도전 또 도전에 어느 정도 효과가 있었고, 더 높은 단계 더욱 더 높은 단계의 무빙타깃의 꿈이 착착 이루어지는가 싶더니, 어느 날, 이제 여기에서 더 이상 나가기는커녕 이 상태를 유지하는 것도 불가능한 것은 아닌가 하는 그런 절망감에 사로잡히게 되는 그런 때가 온다면? 그 처참함은 모든 것을 일순에 무위로 만들어버릴 것이다. 의미 없음 그 자체. 날아오르던 새가 어느 날 갑자기 동력을 잃어버린다면? 어떤 관점에서도 부정적 관점으로 우리축구를 비하하고 싶은 마음에서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니다. 단지 축구라는 비유적 단어를 빼고 볼 때 최근에 몇 번 또 어제 오늘 뉴스를 도배하고 있는 그 죽음의 형태가 이렇게 설명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이다. 사실, 사람들 개개인의 삶, 아니, 또 지금 세 나라의 전체적 모습과 그 흐름이 이런 특징을 보이고, 바로 그렇기에 앞으로 언젠가 어떤 위험이 닥칠 때의 모습을 설명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그런 생각에서.... 세 번째 또는 네 번째의 삶에 불어 닥칠 수 있는 그런 비극을 막고 피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있다. 있고말고. 과정을 즐기는 것. 사실, 어떻게 보면 말 장난에 지나지 않는다 생각할 수도 있었지만, 우리 선수단이 자주 쓰던 표현 아닌가. 그 생각의 아름다움. 그것이 생활화 된 나라가 바로 북구의 그 나라들이고 스위스요 벨기에 그 나라들 아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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