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그날 - o

쓰러진 옥수수 다시 일으키기

뚝틀이 2010. 8. 15. 15:10

사실 금년엔 아무 것도 문자 그대로 아무 것도 심지 않으려 했다. 지나간 경험이 말해주듯 언제나 실망이 따르는 농사는 해 무엇하랴. 어차피 전원에서 '그냥' 지내는 것이 목적이니 쓸테 없는 위선일랑 아예 떨쳐버리자. 하지만, 그게 그리 간단한가. 윤회장, 우리 밭 빈 것을 보고 옥수수 갖다주며 심으라하고, 집에 놀러오는 사람들, 혹 상추나 고추 심은 것 없냐 물어보고. 알리바이. 세상에 제일 편한 것이 바로 이 알리바이 세우기 아니던가. 도시 사람들과 대화할 때 아무 것도 하지 않는다 이야기하는 것보다는 우리 밭에 어쩌고 하는 것이 훨씬 더 분위기를 부드럽게 하니. 그런데, 세상 진리는 어디에나 어김없이 통하는 법. 대가를 요구하지 않는 위선 그런 알리바이는 성립하지 않는 법. 이 상추 옥수수 밭, 아무 것도 아닌 것 같아도 은근히 일손을 요구한다. 우선 준비작업으로 고랑 이랑 내기부터 시작해서 그래도 어느 정도 퇴비로 땅 준비를 해야하고, 그 후 이어지는 풀 뽑기 작업. 그래도 솔직히 가벼운 취미생활 그 정도 차원이었다. 상위에 올라오는 신선한 푸성귀, 우리집 옥수수 따먹는 그날을 미리 그리며 국도 변 옥수수 사먹기. 며칠일지 모르지만 그래도 조금만 지나면 우리집 옥수수 저 탱탱한 녀석들 이제 맛있게 즐길 수 있는 그날이....  어제까지도 그렇게 생각했다. 지난 태풍도 다행히 비껴갔고 이제 다음 태풍이 오기 전에는 저 녀석들 거둘 수 있으니. 어제까지, 아니 아까 새벽3시에 일어나 비오는 밖을 멍하니 아무 생각없이 내다볼 때까지만 해도 그랬다. 그런데, 갑자기 하늘이 노했는지 웬 번쩍과 우르릉 그렇게 요란하던지. 바람은 그다지 세지 않았지만, 그래도 우리 옥수수 다 쓰러지겠구나 그런 생각이 들었다. 환하게 밝은 다음 눈에 들어오는 저 옥수수밭. 컨테이너 옆에 쌓아두었던 지지대 밖고 고추실 풀어 이 녀석들 이리 들고 저리 일으키며 제발 제발 해보지만 여기 뚝 저기 우두둑 소리에 난 싫어 생명을 포기하는 소리들. 이 고추 실에 줄기에 상처가 나지 않도록 옆의 풀 적당히 섞어가며 버퍼영역도 만들어보지만, 구름 사이로 내 비치는 저 햇빛. 볕. 어지러워 쓰러질 것 같은 저 따가운 햇살. 어제까지만 해도 비내리는 하늘을 원망했었는데. 땀. 산에 오를 때 몸에서 나는 땀냄새와 이처럼 밭일 할 때 그 냄새는 전혀 다르다. 하나는 가장 혐오스러운 단어를 끼어넣어야 실감이 날 그런 악취라고나 할까 그 정도이지만, 밭 일하면서 내뿜는 몸냄새는 글쎄 좀 구수하다고나 할까. 심리상태? 물론 그런 요인도 있겠지만, 아마도 그 냄새를 느끼는 요인보다는 땀을 몸 밖으로 내보내는 역할을 하는 몸이 느끼는 상태, 그 엔돌핀이니 아드레날린이니 하는 것을 운반하고 걸러내는 피와 장기 상태, 그런 것에 따라 분비물의 냄새 자체가 달라지는 것은 아닐지. 언제나 느끼는 똑 같은 진실. 산을 오를 때 건, 집 주변 정리 일을 할 때건, 그 때는 내가 왜 무엇 때문에 이런 고생을 사서 사는 것이지 하면서 투덜대지만, 따뜻한 물에 샤워하고 편한 자세로 돌아오자마자 돌아오는 평온함 또 행복감. 글쎄, 사는 것이 무엇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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