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그날 - o

큰 것과 작은 것

뚝틀이 2010. 9. 2. 12:51

바람이 분다. 보통 바람도 아니고 태풍 바람이니 오죽하랴. 저 소나무 꺾어질까 겁난다. 끔찍한 장면에선 사람들이 고개를 돌리기 마련이다. 저 소나무 어느 순간 뚝 부러질까 겁나 내 고개를 돌린다. 뚜~ㄱ. 고개를 돌리고, 다른 일에 열중하려 해보지만 생각처럼 쉽질 않다. 다시 고개 들어 나무를 올려다본다. 흔들 흔들. 높이가 적어도 삼사십미터. 백년을 넘게 살아온 저 소나무들. 한 두 그루도 아니고 서른 그루. 그렇게 쉽게 부러질 수 있겠는가. 논리적 사고요 희망섞인 바람이다. 비명을 질러대는 잔가지를 보다 줄기쪽으로 눈이 향한다. 육중한 저 모습. 믿음직한 저 모습. 양 팔로 안을 수도 없는 그 큰 줄기가 흔들 흔들 옆으로 움직인다. 필터링. 수 많은 잔가지의 촐랑거림이 상쇄되며 낮은 진동 성분만 큰 줄기에 전달된다. 묵직함과 촐랑거림. 그래도 비명은 비명이다. 잔가지의 이 비명을 큰 줄기라로 듣지 못하겠는가. 나무를 지탱하는 힘은 줄기에서? 천만에 뿌리,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저 땅 속에서 사방으로 뻗어나간 그 뿌리. 바람이 불어도 쓰러지지 않으려 뿌리가 뻗었다고? 그것 역시 논리다. 나무가 논리적으로 생각해서 그리했다고 해도 할 말이 없다. 하지만, 지난 그 수많은 세월 동안 어찌 바람만이 어려웠겠나. 가뭄과 홍수. 물컹거리는 바닥 그것을 견디지 못했다면 쓰러질 수밖에 없었을 것 아닌가. 그때마다 안간힘 써가며 더 옆으로 옆으로 퍼져나갔을 것이다. 하지만, 가뭄, 바로 그 가뭄이 이 지탱하는 능력의 원천이 되었을 것이다. 물을 찾아 더 깊은 곳에서의 수분을 찾아 더 깊이 더 깊이 뿌리가 들어갔을 것이고, 돌이건 흙이건 가리지 않고 있는 힘을 다해 밀치고 뚫으며 밑으로 밑으로 향했을 것이다. 그 어려움이 얼마나 힘들고 괴로웠기에 저리 휘어지고 비틀어졌을까. 이 심한 이 무서운 바람에도 저 나무가 쓰러지지 않고 버틸 수 있는 힘 뒤에는 가뭄이라는 어려움이 있었다면, 어려움, 그것이야말로 축복 아니었겠나. 그 가뭄과 홍수 바람 거기에 시달리며 만들어진 저 아름다움 그 예술성 덕에 이 심한 태풍의 충격을 견뎌낼 수 있는 용수철과 관절 역할의 완충영역들이 생겨났던 것이고. 그래도 저 나무 혼자 있었으면 역시 아직까지 버티고 있기에는 무리였을 것이다. 군락. 나무 옆에 또 나무, 그 옆에 또 나무. 비록 그 뿌리는 각각이라도 서로가 서로의 바람을 막아주며 커갔겠지. 그러기에 저 나무들 멀리서 보면 마치 단 한 그루의 나무같은 그런 모양을 이루고 있는 것 아닌가. 옆에 경쟁자가 나타났다고 시기했다면? 식물이 아니고 동물이었다면? 서로 싸우고 으르렁대다 다 흩어져 다들 어디론가 가버렸겠지. 움직일 수 없는 식물이기에, 서로가 서로의 뿌리를 건드리고 서로가 서로의 가지 위에 올라서는 신경전을 벌이면서도 그 누구도 여기를 떠나지 않았기에 이렇게 군락을 이루고 이번 태풍도 견딜 수 있었겠지. 과거의 그 수많은 가뭄도 서로가 서로를 도우며 그 밑의 땅을 촉촉한 상태로 감싸안을 수 있었기에 지금도 저리 버틸 수 있겠지. 작은 것과 큰 것. 동물적 본능으로는 작은 것을 견디지 못하기에 식물같이 저리 큰 것을 이룰 수 없다는 것. 이것이 어쩌면 바로 우리들 인간의 비극일 수도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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