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읽기

정민의 '漢詩 美學 散策'

뚝틀이 2010. 11. 3. 11:23

책을 주문할 때는, '나중에 시간 날 때 한가로이 여기저기 들춰보며' 漢詩의 맛이나 한 번 볼까 하는 가벼운 마음이었다. 배달 온 책의 포장을 뜯을 때도, 그 두께에 눌려, 일단 어디 꽂아두었다가 긴 긴 겨울밤에나 읽어야지 그런 생각이었고. 하지만, 웬걸. 몇 페이지 건드려보다 상황이 달라졌다. 다른 일 다 잊어버린 채 며칠 동안 그냥 푹 빠져 속사포처럼 읽어나갔다. '천천히 되새기며' 읽는 것은 어차피 또 나중 일이고.

 

내용은 제목 그대로다. 24개의 테마로 구분하여, 漢詩와 詩人의 세계 그 성격과 특징을 어떻게 이해해야하는지, 詩作에 있어서의 기본 마음가짐은 어때야하는지, 詩에 쓰이는 단어와 표현의 선택 거기에는 무슨 바탕생각이 깔려있는지, 詩想이 떠오르고 마음에 드는 구절을 얻기까지 얼마나 피 말리는 과정이 숨겨져 있는지, 등등의 이야기를 풍부하고 생생한 故事에 곁들여, 시원스레 풀어나간다. 문장 하나하나 해석 하나하나에 들어있는 깊이가 읽는 사람 마음을 사로잡는다.

 

唐代와 宋代의 詩에 관한 책을 읽을 때마다 골치 아팠던 五言絶句니 七言律詩니 거기에서 平仄 또 押韻 규칙이 어떠니 하는 그런 이야기가 이 책에는 없다. 그저 작가가 펼쳐 보이는 시의 세계와 거기에 곁들여진 사상을 즐기면 된다. 그렇다고, '무게 잡는' 시들만 다루는 것도 아니다. 중간의 몇 章은 터져 나오는 웃음을 억누를 수 없을 정도로 '글자'와 '모양'을 갖고 '장난치는' 시들로, 눈물이 글썽글썽해질 정도의 사실적 묘사가 가득한 시들로, 가득했다. 한 마디로 '漢詩 世界의 전체모습'을 보여주는 책이라고나 할까.

 

특히 마음에 들었던 점은 바로 그 번역된 '한글 詩'의 아름다움이었다. 이제까지 각인되어있던 '어딘가 툭툭 걸리는 漢詩'란 생각이 씻은 듯 사라진다. 우리 땅의 詩건 중국 땅의 詩건 이 책의 번역은 어색한 흐름이 전혀 없이 자연스럽기만 하다. 풀어 쓰는 것 역시 또 하나의 詩作일진데, 이 작가는 멋진 詩人일 것임이 분명하다. '우리말 詩'를 정리해준 작가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전하고 싶을 정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