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읽기

카잔차키스의 '그리스인 조르바'

뚝틀이 2010. 12. 13. 15:14

작가 Νίκος Καζαντζάκης(1883 - 1957)가 만났던 실제 인물 Αλέξη Ζορμπά과의 이야기.

 

'책속에서 찾을 것은 더 이상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된 작가(책 속에서의 일인칭 나레이터)는 삶의 진리란 육체적 노동을 통하여서야 얻을 수 있는 것 아닐까 하는 생각에 크레타 섬의 갈탄광산으로 향하게 되는데, 항구에서 일자리 찾아 접근한 한 '자유인'에게서 그 무엇인가 강렬한 느낌을 받게 되어 즉석에서 그를 십장 겸 요리사로 고용하는 장면으로 소설은 시작되고, '교육이라고는 받아본 적이 없는' 이 조르바와 함께 생활하면서, 작가는 부끄러움 없이 '육적인 삶'을 즐기며 자유롭게 살아가는 그의 모습을 보며 '땅위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의 철학'이라는 새로운 지평을 발견해 나가는 과정이 소설 내내 계속된다.

 

읽기가 편한 책은 아니다. 무슨 파격적인 스토리 라인이나 긴박감 넘치는 스토리 전개 그런 것 전혀 없이 밋밋하게 흐르는 이야기에, 여자란 바보스럽고 탐욕스러운 존재이며 쾌락의 대상에 지나지 않는다느니 하나님과 악마는 하나의 두 모습일 뿐이라느니 하는 이야기가 반복 또 반복되며, 타 종족 살인에 수도원 수도승들에 대한 우스꽝스런 묘사가 계속 나오니, 아무리 1914년경 크레타에서의 모습을 두 차례 세계대전이 지난 1946년에 쓴 책이라 하더라도, 또 하물며 그로부터 또 60여년이 지난 오늘 날의 시각의 독자로서 어찌 쉽게 받아들일 수 있겠는가.

 

문학사에 한 획을 그었다는 평을 듣는 작품 대부분이 그렇듯이 이 소설 역시 무슨 상징성인가를 내포했을 텐데, 작가를 노벨상 후보의 반열에 올려놓기까지 했던 이 문제작에서 그런 점을 찾자면 '고상함을 추구하던 젊은이의 carpe diem 삶의 발견'이라고나 할까. 어떤 때는 '산전수전 다 겪은 밑바닥 인생살이 60년' 조르바의 모습에서 돈키호테의 산초나 니체의 위버멘쉬 분위기가 느껴지기도 하고, 또 때로는 관찰자 작가가 원하는 것이 데미안이나 오디세이아의 분위기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중간에 몇 번 그냥 덮을 뻔했던 이 책을 그래도 끝까지 읽을 수 있었던 것은 이윤기 선생의 그 탁월한 번역 솜씨덕분이었다는 생각에 고인에게 또 한 번 고마움을 느낀다.

'책 읽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Franz Kafka의 'Die Verwandlung'  (0) 2010.12.17
곰브리치의 '서양미술사'  (0) 2010.12.16
김성현의 '오늘의 클래식'  (0) 2010.12.11
김장수의 '비스마르크'  (0) 2010.12.09
이태형의 '별자리 여행'  (0) 2010.12.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