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읽기

Quentin Skinner의 '마키아벨리의 네 얼굴'

뚝틀이 2011. 1. 4. 00:22

다른 문화권에 속해서일까, 2200여 년 전에 쓰인 韓非子를 읽을 때는 그가 말하는 法과 治와 術의 뜻을 이해하기 어렵지 않지만, 600년 전 Machiavelli의 'The Prince'는(보통 군주론이라 번역됨. 예를 들어 http://www.constitution.org/mac/prince등에서 全文을 다운받을 수 있음) 책이 두꺼운 것도 아니고 또 문체가 어려운 것도 아닌데, 중간 중간 몇 문장만 낯익을 뿐, 고개를 끄덕거리기가 쉬운 일이 아니다. 적당한 해설 판 하나 없을까 찾아다니다 발견한 책이 이 Quentin Skinner의 (원래는 1981년판, 2000년에 개정판) 'A very short introduction : Machiavelli'.

 

이 책은 마키아벨리의 生을 네 단계로 다루고 있다. 첫 번째 章은 그가 피렌체 공화국 외교관으로 일하던 시절 얻을 수 있었던 '관찰의 경험', 제2장은 공화국의 몰락과 함께 일자리를 잃게 된 그가 새로운 실력자로 부상한 메디치 가문에 '빌붙어보려' 자신의 관찰과 사상을 담아 쓰게 된 '군주론'(사실 이 부분에서 한비자의 성격과 비슷하다), 제3장은 온갖 노력이 무위로 돌아간 후 그가 '시대를 원망하며' 로마의 역사를 돌이켜보며 쓰게 된 주석서 '로마사 논고', 마지막 제4장은 '겨우 한 자리 얻는데 성공'한 그가 '피렌체 역사'를 쓰는 임무를 맡게 되지만, 이번엔 그 메디치가의 몰락하고 ‘새 세상’이란 기회가 왔는데도 그 '권력에 대한 봉사한 과거이력' 때문에 오히려 쓸쓸히 사라져야만 하게 되는 마키아벨리의 모습을 다루고 있다. 그런데, 이 네 개의 章에 외교관, 조언가, 자유이론가, 역사가의 제목이 붙어있어, 번역판에 '네 얼굴'이란 이름을 붙인 모양.(글쎄 좀 점잖게 표현하자면 마케팅 테크닉?)

 

인간마키아벨리의 개인적 한계와 비극을 다루고 있는 전기 성격의 이 책에 비타민은 듬뿍하다. 저자가 전하고자하는 마키아벨리의 핵심사상은 Virtu(미덕과 결단력의 포용적 의미). 행운으로 얻게 된 권력을 자신의 능력으로 착각 자만에 빠졌다 몰락하게 되는 인간들과 필요한 경우라면 공포의 수단으로 또 부도덕한 방법으로도 다스릴 줄도 아는 군주들을 보여주기도 하고, 그렇지만 군주의 진정한 목표는 명예와 영광이요, 옳지 못한 군주 또는 권력층에게 이로운 것은 국가에 해가 되고 국가에 이로운 것이 그들에게 해가 된다는 진실임을 일깨워주기도 한다. 부자 파벌과 평민 파벌의 갈등과 대결은 공화국을 강하게 유지하는 필요악일 수도 있지만, 지배하고자 하는 권력자의 욕구와 통제받지 않으려는 인민의 욕구 그 반목에, 지도자와 군대의 우유부단과 비겁함이란 부패의 징후가 나타나고, 결국 한 사회의 몰락을 불러올 수 있게 된다는 역사적 이야기를 곁들여가며.

 

권력을 잡는 법, 권력을 유지하는 법, 통념에 상관없이 오직 그 관점에서의 책들이, 韓非와 그의 제자들이 엮은 韓非子와는 대조적으로, 금서의 불명예를 덮어쓰게 되고 또 마키아벨리란 이름까지 부정한 이론가의 대명사로 낙인찍히게 만들게 된 것은 아마도 교황이라는 절대권력 지향적 종교권위자의 심기를 건드렸기 때문이고 또 르네상스가 한창이던 당시의 시대상황을 거슬렀기 때문이리라. 그의 서술을 읽는 동안 이 Prince라는 단어에 요즘의 기업이나 재벌이라는 단어를 집어넣어도 하등 어색할 것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 한 편으로는 오래 전 그 옛날이나 지금이나 권력의 기본에 큰 차이나 변화가 없었다는 것이 신기하기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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