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나도 유명한' 니체의 책과 어느 시대 어떤 사람인지조차 알려지지 않은 홍자성인지 홍응명인지 하는 사람의 책 두 권을 동시에 읽어나갔다. 역사 종교 예술 도덕 삶의 관점에서 '사람들 마음속에 있는 진실'이 무엇인지를 다룬다는 공통점이 있어 보이기도 하고, 대충 시기적으로 전자는 우리 조선조의 전반부에 후자는 조선조 후반부에 해당하지만 당시 동양과 서양 사이에 사상교류가 이루어진 것도 아니니 어느 정도 동일 선상에 놓고 이 둘의 접근법에 어떤 차이가 있는지 느껴보고 싶은 일종의 호기심도 작용했기 때문이다. 지금이야 니체가 널리 알려졌지만 당시엔 그 역시 '이름 없는 인물' 아니었던가.
마치 '무엇이든 물어보세요. 그 참 모습을 알려드릴 테니.'라는 행사에 다녀온 느낌이다. 방A에 붙은 팻말은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Menschliches, Allzumenschliches)'이었고, 방B에 붙은 팻말은 '菜根譚: 채소뿌리만 먹고 살아도 그 속에 道와 樂이 있어요.'였다. 방A의 연사 Nietzsche는 스스로를 '자유의지 인간'이라 선언하고, 단어 하나하나에 또박또박 힘이 들어간 목소리로 때로는 정곡을 찌르는 간단한 문장 한 방으로 때로는 제법 긴 사설을 붙여가며 자신의 견해를 '명확하게' 설파해나가는 반면, 방B의 연사는 스스로를 還初道人이라 소개하고, '똑 부러지는' 대답 대신 '알아들을 사람만 알아듣게나.' 하는 식으로 차분한 목소리로 선문답하듯 자신의 생각을 펼쳐나간다.
방A에는 모든 가식의 굴레를 떨쳐버리고 인간 본질의 가장 밑바닥까지 내려온 사람의 '진실선언' 그 외침의 분위기로 가득했고, 방B에서는 '오늘'만을 보지 말고 어제를 돌이켜보며 내일의 허무함도 미리 생각해두는 사람만 '진정한 삶'을 살아갈 자격이 있다는 타이름의 사랑방 분위기였다. 무슨 형이상학적 이야기나 허공을 맴도는 도덕적 이야기로 사람들의 시간을 뺏는 대신, 때로는 위트처럼 들리는 신랄한 비판도 마다않고, 때로는 '모든 것이 헛되고 헛되도다.' 식의 깨달음도 들려준다.
그 맛을 알아볼 수 있는 부분 하나씩.
Es ist weit angenehmer, zu beleidigen und später um Verzeihung zu bitten, als beleidigt zu werden und Verzeihung zu gewähren. Der, welcher das Erste thut, giebt ein Zeichen von Macht und nachher von Güte des Charakters. Der Andere, wenn er nicht als inhuman gelten will, muss schon verzeihen; der Genuss an der Demüthigung des Anderen ist dieser Nöthigung wegen gering.(이 독일어는 古語 그대로. 소리 내어 읽으면 마치 무대대사 같은 효과가 난다.)
모욕을 주고 나중에 용서를 비는 편이, 모욕을 당하고 나중에 용서해주는 편보다 낫다.
앞서의 경우에는, 힘이 있음을 보여주고 나중에 성격이 좋음까지 과시할 수 있게 되지만,
뒤의 경우에는 비인간적으로 보이지 않기 위해 할 수 없이 용서해야 되는데 그 이유로 그의 수치스러워하는 모습을 별로 즐길 수 없게 된다.
怨因德彰 故使人德我 不若德怨之兩忘
仇因恩立 故使人知恩 不若恩仇之俱泯
원한은 덕을 베푸는 과정에서 나온다.
그러므로 사람들로 하여금 내게 덕이 있다고 여기게 하기보다는 덕을 베풀 사람인지 원망할 사람인지 아예 모르게 하는 것이 낫다.
원수는 은혜를 베푸는 과정에서 생긴다.
그러므로 사람들로 하여금 나의 은혜를 알게 하기보다는 차라리 은인인지 원수인지 아예 모르게 하는 것이 낫다.
내가 동양 사람이라서 그럴까? 니체의 글은 읽으면 읽을수록 신경이 곤두서고 스트레스가 쌓여 가는데, 채근담 이야기에는 저절로 그 속으로 녹아들어가듯 편한 마음이다.
주머니에 넣고 다닐 수 있는 작은 책이 있다면 당연히 菜根譚.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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