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그날 - o

한밤 라면

뚝틀이 2011. 5. 19. 02:36

밤 2시. 잠이 오지 않는 밤. 빗소리. 마이크로 생명세계 책을 읽어도, 재미는 있는데, 눈이 피곤하다. 잠을 청하며 괴로워하느니 차라리....

나도 모르게 라면에 손이 간다. 라면. 참 오랫동안 잊었던 아이템. 그다지 당기지도 않는데, 그래도 웬일인지 손이 간다. 물을 끓이고 라면을 넣고. 익숙한 가위질 손놀림. 냄새가 역하다. 내가 지금 왜 라면을 끓이고 있지? 그릇 옆 김 통에 손이 간다. 그냥 나도 모르는 사이에, 손이 움직이고 마음은 계속 갸우뚱. 김 통을 열면서 모든 의문이 풀린다. 김 '향기'. 그래 바로 이거야. 이유야 어쨌든 따뜻한 음식에 김 곁들여 본 적이 언제던가. 내 괴팍한 습관 하나. 난 언제나 라면에 김을 곁들인다. 마치 밥을 김을 싸 먹듯이. 라면 뜨거운 라면에 김 한 장 올려놓고 젓가락으로 말아서 든다. 김이 풀어지기 전에. 그때 코로 스며드는 김의 향기. 그 감칠 맛 남들은 모른다. 이런 괴상한 습관을 가진 사람이 또 있기는 있을까? 과거의 무슨 습관을 나의 뇌가 무의식적으로 불러낼 때는 이유가 있는 법. 항상 그렇다. 무언가 불만일 때. 오늘도 그렇다. 수많은 미사여구와 찬사가 오가는 자리였지만, 나에게는 '역겨웠다'. 허풍과 과장 또 자만 그 모든 것이 완벽하게 이루어진 하루. 피곤하다. 정말 피곤하다. 사회생활을 접은 지 5년 째. '사회생활'. 나에겐 일종의 결벽증이 있다. 진실성이 결여된 허장성세, 내 눈엔 아비규환에 다름 아니다. 그런 생활 그런 사회 속에서의 긴장 그런 것 멀리멀리 떠나 산 지 오래되어서 그런지 이젠 내 행동에 긴장감이 없다. 최근의 심각하다 느껴질 정도의 치매 비슷한 증세도 아마 그래서 아닐까  생각이 든다. 내 주변에 허풍 과장이 없으니 증오가 사라졌고, 증오와 함께 긴장도 사라졌고, 그런 긴장감이 사라졌으니 alert 해제. 그래서 풀어질 대로 풀어진 마음, 그래서 주변상황 변화에 둔감해지고 치밀함 또한 사라진 것 아닐까 그런 생각이. 어쨌든 오늘은 예외적으로 오랜만에 다시 '사회생활'. 객관적으로 봐서 뭐 잘못 된 것 하나 없는 그런 모습일 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나에게는 내 마음은 불편하기 짝이 없는 시간이었다. 하긴, 또 하나 마음에 걸리는 것이 있다. 지난 주말 두 번의 주례야 내 정말 진심으로 마음 속 깊은 곳 아주 깊은 곳으로부터 기쁜 마음으로 섰지만, 어디 그뿐이랴, 내 지금까지의 그 어떤 주례도 신랑을 또는 신부를 진심으로 사랑하고 축복해주고 싶기에 섰지만, 이번 주말 주례는.... 이제 내일과 모레는 내 서울에 가 있을 텐데. 아직 신랑 신부는 인사조차 오지 않고. 결국 당일 예식장에서 처음 보는 사람의 혼례를 축복해줘야 한다는 이야기 아닌가. 전혀 짬을 낼 수 없는 참으로 바쁜 젊은이들 아닐까 하는 생각에 측은한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그래도 황당하기 그지없는 일. 그 수많은 주례史에서 이런 일은 처음이다. 이 역시 '사회생활'과 '인간관계'의 후유증. 어떤 일이 있어도, 이번이 마지막. 지난 번 '공표'가 '극히 예외적인 애제자'들로 무위로 돌아갔고, 그 부모와의 '아주 가까운 인간관계' 때문에 그 연장선상에 놓이게 되었지만. 이번이 정말 마지막. 예상되는 다음 부탁이 있기는 하자만, 아무리 마음이 편치 못하게 되더라도 이제 더 이상은 없다. 참 이상한 일이다. 아침에 뚝틀이 데리고 산책을 가려할 때, 이 녀석 어디론가 사라지더니, 그냥 혼자 돌아와서 자기 집 속으로 들어가더란다. 그 후론 그냥 서글픈 표정으로 고개만 문밖으로 내놓고 있었고. 주인아찌의 마음을 미리 짚었던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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