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사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전혀 변화가 없는 밋밋했던 하루. 그런데 무슨 일일까. 오늘 수많은 일들이 일어났던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것은. 그 일들 중 어떤 것도 내 의도와는 상관없이. 쌀쌀해진 날, 문턱에 걸터앉아 생각한다. 작년보다 가을이 더 빨리 온 듯, 계절이 '생소하게' 느껴진다. 가을. 가을이 무엇이지? 참 작년과 다른 것 하나 있다. 마을 분위기. 작년 이맘 땐 정말 요란했었다. 송이 채취. 외인들 막느라 사이렌에 스피커 그 요란 법석. 올해는 조용하다. 마치 죽은 마을처럼. 금년은 송이가 없단다. 거짓말 같이 없단다. 예측. 보름 전만해도 그랬다. 올해는 비도 많이 오고, 또 송이가 자라기 좋은 기상이 계속되어, '엄청나게' 많이 나올 것이라고. 그런데 지금은 영이다 제로다. 이 사람들 마음이 얼마나 아플까. 이상기후에 농사가 말 아니었는데, 이제 믿었던 수확 가능성마저 완전히 사라져버린 이 현실에.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읽을 책이 떨어져, 일종의 불안감까지 느낄 정도였는데, 그 사이 이런 저런 계기로 책이 쌓였다. 올 가을 겨울 충분히 날 수 있을 정도의 양식을 쌓아놓은 기분이다. 하지만, 이젠 마음 한 구석으로부터 읽기에 대한 공포도 느껴지는 것이 사실이다. 책을 손에 잡고 거기에 빠져 들어가면서 생기는 우울증. 참 의사들 용어로는 우울증은 질병이라 하고 그냥 우울감이라고 하는 것이 더 정확한 표현이라 하는데 그건 좀 일상생활과 동떨어진 인위적인 단어 같기도 하고. 어쨌든 내 좋아하는 책들은 대개 심각한 내용을 다루는 것들이고, 거기에 몰입되다보면 그런 증세가 생기는 것도 사실이고. 또 무엇보다 무서운 것은 한 번 잡으면 쉽게 손을 떼지 못하는 습관 때문에 밤새우기 십상이고, 이제 거기에 더 하나, 가을 겨울 하늘이야말로 별 관측에 최적기니, 은근히 겁이 난다. 꽃 사냥 뜸해짐에 비례해 운동량도 떨어질 테니. 다시, 오늘 아무 일도 없었지만 수많은 일들이 일어난 듯 느껴지는 이유는? 갑자기 쌀쌀해진 날씨 탓? 생각, 생각, 금방이라도 폭발할 듯 머릿속에 꽉 찬 생각들 때문? 아니면 그냥 우연? 우연. 삶을 생각한다. 쉴 새 없는 우연의 연속. 별이 많을까 빈 공간이 많을까,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수많은 별들. 멀리 떨어져서가 아니라 단지 빛이 없어 보이지 않는 별들. 그들에게도 무슨 존재의미가 있을까? 아니 우리 지구처럼 오히려 빛 없는 별들에 더 의미가 있는 것은 아닐까? 빛과 생명. 혹 삶 역시 그런 것 아닐까. 역사에 빛나는 인물들. 그들은 빛을 발휘했을 뿐, 그들 안에 삶은 없었던 것 아닐까? 우리 마을 사람들. 비록 빛을 내지는 못하지만, 이들의 삶 그 인간 모습을 내 알고 있는데.... 그런 쓸데없는 생각이 계속될 때. 저 호수 물 밑에 수면 바로 밑을 날아가게 동력을 가진 화살을 쏘아 보낼 때, 거기에 물고기가 맞을 확률은 얼마나 될까, 그런 일 없이 그 화살이 그냥 곧장 나갈 수 있는 거리가 얼마나 될까, 어디까지가 우연인가. 뭐 그런 쓸데없는 생각이 다시 계속될 때. 별의 빛 또 물속 화살처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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