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그날 - o

뚝디, 뚝디 이 녀석

뚝틀이 2011. 9. 16. 18:07

오늘도 폭염주의보라지만, 이렇게 맑은 날 집에 있을 수 있나. 어차피 숲속으로 들어가면 시원할 텐데. 더구나 송이 철 시작되면 산에 오르기 눈치 보이지 않겠나. (이미 재작년부터 송이채취 자격은 생겼지만 그 참여권유를 정중히 거절했다. 내 이 마을에 들어올 때 어떤 형태의 경제활동도 하지 않을 것이란 원칙을 정했고, 그것은 충실히 지킬 생각이다. 도시 어느 직장의 수입보다도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횡재’ 수준인 이런 기회를 마다하는 나를 여기 사람들은 이해 못하겠다는 표정이다. 하지만, 여기뿐 아니라 월악산 소백산 어디나 다 마찬가지로 외부인에 대한 통제도 심하고, 그 험악한 분위기는 쉽게 상상되지 않을 정도다. 어쨌든 내일부터 송이채취 시작이니 결국 오늘이 마지막 산행기회인 셈.) 아직 중환자 상태의 뚝틀이를 데리고 갈 수 없고, 할 수 없이 오늘은 뚝디를 대타로. 이 녀석은 워낙 말을 잘 들으니, 아예 목 끈조차 필요 없다. 사태골. 사실 꽃이 많을 듯싶은 곳인데, 막상 찍을만한 꽃은 거의 없다. 꽃 관점에서는 이곳을 오르는 이유는 딱 하나. 멀리 갈 컨디션이 아닐 땐 그저 여기라도. 위로, 위로, 또 위로. 소득이 없다. 신선봉 방향으로 들어서자 뚝디의 행동이 점점 이상해진다. 흠칫흠칫 놀라기도 하고 또 혼자 멀리까지 뛰어갔다 오기도 하며 불안해한다. 너무 심하다 싶은 그 모습에 점점 더 신경 쓰이기 시작한다. 아니나 다를까 막 짖기 시작. 길에서 너무 떨어져 들어왔나. 이 정도로 요란하게 짖는 것을 보면 역시 또 멧돼지. 하지만, 내 눈엔 보이질 않는다. 부리나케 혼자 뒤로 내뺐다가 내가 부르니 할 수 없이 옆으로 왔다가 다시 또 뒷걸음질. 이런 겁쟁이 같으니. 뚝틀이 같으면 벌써 한 판 붙었을 텐데. 하긴, 그러고 보니, 지난 번 뚝틀이가 한 판 벌였던 그 지점을 좀 전에 지나왔다. 오늘은 더 깊이 들어온 것. 공연히 나까지 불안해진다. 발걸음을 돌려 다시 내려와 다른 쪽 계곡으로. 뚝디 이 녀석 어디로 갔는지, 아무리 휘파람 불어도 오질 않는다. 할 수 없지. 하지만, 이런 상황에서 꽃 사진 제대로 찍힐 리 있나. 대충 가볍게 몇 장 찍고 다시 아래로. 내려오는 내내 휘파람 아무리 불어대도 이 녀석 모습을 나타내지 않는다. 뚝틀이었더라면 이렇지는 않았을 텐데. 할 수 없지 뭐. 그냥 집으로. 하, 이 녀석. 혼자 집으로 와 숲속을 보며 열심히 짖고 있다. 하긴, 뚝틀이처럼 미련하게 위험 무릅쓰고 싸우느니 이게 훨씬 현명한 선택. 하지만, 주인인 내 입장에서 볼 때, 효용성의 관점에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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