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그날 - o

Rise-time Fall-time

뚝틀이 2011. 12. 21. 12:39

라이즈 타임과 폴 타임. 반도체에 들어오는 신호에 반응해 출력되는 파형 이야기다. 반응속도를 빠르게 하려 올라가는 모양은 가파르고 내려오는 모양은 느슨하다. 빠른 회로를 만들려 자연을 흉내내다보니 그렇게 된다. 우리들 인간사회 역시 자연의 일부다.  마치 눈사태 일어나듯 '눈 깜짝할 사이'에 온 세상을 덮어버리는 유행. 하지만, 하나의 유행이 끝났다고 그 모습이 순식간에 자취를 감추는 것은 아니다. 정치 권력세계의 모습 역시 마찬가지다. 헌나라당 권력중심이 이동하는 것을 보아도 그렇고, 안철수 바람을 봐도 그렇다. 더구나 최근 중동과 아랍권에 부는 자유의 바람 역시 마찬가지고. 라이즈 타임과 폴 타임.

 

그렇다면, 이제 이북은? 어제 오늘 매스컴 분석은 천편일률적이다. 군부가 김정은을 지지하는 한 격변은 없을 것이라 하고, 주민봉기 가능성도 일축하는 논조 역시 마찬가지다. 전기부족으로 뉴스의 전달속도도 늦고 더구나 인터넷이나 문자 메시지 그런 것도 보편화되어있지 않으니, 급격한 동요 그런 것은 없지 않겠느냐, 그런 식이다. 참 논리적이다. 정말 그럴까? 어렸을 적 기억이 난다. 그땐 이쪽 남쪽 우리나라에도 신문이나 라디오가 주 전파원이었고, 아주 큰 무슨 사건이 있을 땐 길거리에 뿌려지는 호외였다.

 

이승만 대통령 하야 요구가 데모대의 구호에서 나왔다는 소식. 꿈에도 상상치 못할 일이었다. '고마우신 이대통령 우리 대통령'하며 이승만 찬가를 부르던 그 시대에. 제기동 파출소는 불에 그슬렸었다. 모두들 그 악명 높은 동대문경찰서로 몰려갔다. 갑작스런 총성. 급히 땅에 엎드린 머리 뒤로 잔등 위로 떨어지는 '흙 파편'들. 투두두둑. 죽음의 공포가 물러서자 피투성이 사람들 업고 부축해 의원 병원으로 달렸다. 격분한 우리는 소리소리 지르며 경무대를 향하여. 적선동 앞을 지날 때 다시 따다다닥. 라이즈 타임.

 

이승만 때만은 아니었다. 굴욕외교 반대 때, 3선 개헌 반대 때, 학교수업 그런 거에 무슨 의미 있겠는가. 학교는 그저 '집합장소'일 뿐이었다. 스크럼 짜고 구호 외치다가, 진압대 곤봉세례에 최루탄에. 이곳저곳 멍이 시퍼렇게 든 멍, 노랗게 변해가던 그 딱지들. 고등학교 때까지만 해도 무슨 기념일마다 나팔 불며 시가행진했던 바로 그 코스. 하늘 높이 떠올랐다 내려오곤 하던 그 멋진 지휘봉 대신, 그 호루라기 소리 대신, 선도자의 구호선창 거기에 따라. 박정희가 악랄해질수록 폴 타임은 길어졌다. 더 끈질겨졌다.

 

이북에서도 이승만 때 박정희 때 그 소요가 일어난다면? 아무리 인터넷 없어도 '남조선' 소식에 상대적 빈곤감 다 알고 느끼게 되고, 어떤 관리 누군가가 표적이 되면 불만은 터지게 되어있다. 그럴 때 거기에서도 우리처럼 '얌전한' 진압이 가능할까? 라이즈 타임. 내 MIT에 있던 해 어느 날. 베를린 장벽 무너지던 날 기억이 생생하다. 시시각각 들어오는 CNN 화면을 보면 눈물을 흘렸다. 내 젊은 시절, '세계라는 실체'에도 눈 뜨던 그때 10년의 세월을 보냈던 곳 아니던가. 그 격한 감동의 순간들. 얼마 전 카이로의 모습이 그래서 더욱 찡하게 다가왔었고. 이제 저 북쪽에서도 그런 일이 일어난다면? 군인들이 발포명령을 거부한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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