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그날 - o

살아가기

뚝틀이 2012. 1. 26. 22:41

 

오랜만의 드라이빙. 메시지 판에 자꾸 뜨는 정기점검 안내가 자꾸 신경이 쓰여 중간에 대구의 서비스 센터에 들렸었지만, 설 연휴에 밀렸던 차들이 몰려든 탓에 그냥 포기하고 다시 고속도로로. 탁 트인 공간, 한산한 시내. 평일 여행. 장시간 운전에 쌓였던 피로도 잠깐 눈 붙였다 일어나니 거짓말처럼 사라진다. 덕분에 아까 체크인 때 받았던 미술관 무료입장권은 무효, 적어도 오늘은 무효. 내일 이 사진 전시회 한 번 볼까 하는 생각 거기엔 자신이 없다. 여행할 때마다 제일 힘든 것은 저녁식사 혼자하기. 이곳저곳 그냥 지나치다 제일 편한 곳 내 잘 아는 곳에 들려 치킨 하나 사든다. 얼마나 오랜만인가. 사실 기름에 튀긴 것은 내 건강에 치명적인데. 그래도 어쩔 수 없지. 텅텅 빈 시내와는 달리 여기는 시끌벅적 요란하다. 콘도와 호텔의 차이점. 방으로 돌아와 ‘생존의무 이행’ 후 냄새를 빼려 남은 것 베란다에 내다놓고 자동적으로 TV 리모컨에 손이 간다. 이것 역시 차이점. 집에서는 TV 화면에 눈이 가고 그런 일은 전혀 없는데. 그러고 보니 읽으려 가져온 책은 트렁크에서 꺼내지도 않았다. 아까 엘리베이터 앞에 섰을 때 귀에 들어오던 라운지에서의 노랫소리가 귓가를 맴돈다. 간단히 한 잔이라도 할까 그곳으로 내려간다. 사실 이런 일도 아직은 없었는데. 라운지에 홀로 앉아 알코올 들이킬 생각을 하는 것. 필리핀 쯤 그 근처 어느 나라에서 온 듯 보이는 가수가 노래를 부르고 있다. 피아노도 놓여있지만, 거기 앉아있는 사람은 그저 노래방 반주 같은 것만 틀어놓고. 영 맘에 들지 않는다. 이런 가수는 아마추어일까 프로일까. 생업으로 노래를 부르고 있으니 그 정의상 프로이겠지만, 실력으로 보자면 웬만한 아마추어 수준에도 훨씬 못 미친다. 생업이란 무엇일까. 하긴 나도 힐튼호텔에서 부른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며 차례를 기다리는 이 가수의 친구들도 있을 테고, 그들 눈에는 이 사람도 ‘성공 케이스’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언제나 이어지는 생각, 생업의 계층, 살아간다는 것, 그 끝없는 사다리. 아까 그 고약하도록 독했던 치킨 집에서의 기름 냄새. TV 화면에서 눈을 떼지 못하던 그 아저씨, 피곤에 절은 창백한 얼굴 그 아줌마. 내려올 때의 생각과는 달리 오래 앉아있을 자리는 아니라는 생각에 그냥 에스프레소 더블 한 잔으로 주문 끝. 앗, 쓰다. 이건 진짜 에스프레소. 갑자기 왁자지껄. 내 뒤로 지나가는 짙은 향수냄새. 흰 코트를 휘감은 한 무리 아가씨들. 흡연석 어디에요 묻는 그 당당한 목소리에 돌아오는 전 구역 금연이라는 차분한 대답. 요란하다, 시끄럽다. 친구들끼리의 해방여행인가? 궁금증이 이어질 여유도 없이 답이 ‘출현’한다. 여행용 트렁크 끌고 온 후줄그레한 차림의 중년 남성들. 자기들 사이로 한 자리 씩 건너 앉게 하는 이들. 일본 관광객 상대하는 직업여성들이다. 점점 더 시끄러워진다. 주변엔 안하무인. 서울에서였지. 내 젊었을 때. 시끄러운 그들 꼴을 못 봐 한 판 붙었던 것이. 뒷골이 당긴다. 일어나자 일어나. 바로 이런 게 변하지 않는 세상모습인데.... 여기 더 앉아 있다가 오늘 또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를 테니. 자기 노래조차 묻혀버리게 만드는 이들을 보며 저 가수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이런 추한 꼴 계속 볼 수밖에 없는 저 웨이트리스들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맞아, 그랬어. 그때 그 한 판 벌이고 난 다음, 어느 식당을 들르든지 거기에서 서빙하는 아가씨들이 참 착해 보여 그들에게 꼭 존댓말을 쓰고 또 팁을 얹어주곤 했던 것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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