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그날 - o

산다는 것

뚝틀이 2012. 2. 3. 00:14

영화보기가 계속된다. 작은 화면 낡은 음질 답답하지만, 이것 끝나면 저것 보고 저것 끝나면 또 다른 것 본다. 마치 마약에 중독된 사람처럼. 이러고 있는 내 자신이 한없이 초라하게 느껴진다. 하긴 따지고 보면 책 읽는 것이라고 좀 더 낫다고 할 수도 없다. 아니 어디 그뿐이랴, 야생화 사진 찍으러 다니는 것도 역시 마찬가지고, 그 어떤 것도 다 마찬가지 아닌가. 마약중독처럼. 산다는 것은 무엇인가. 살아있다는 것이 무엇인가. 오늘 만나 이야기를 나누었던 두 사람. 한 사람은 내 마음 속으로부터 존경해 마지않던, 우리나라의 품격을 높이는 ‘작품’을 만든 장본인이고, 내 셔터를 눌러 준 또 다른 한 사람에 대해서는 아는 바 없다. 단지 우리나라에서 제일가는 의사가 지금 현재 자기의 병을 관리해주고 있는 주치의라는 자랑을 들었을 뿐이고. 어디 세상사는 사람들이 이런 이들 뿐이겠는가. 관광포스터에 나오는 쪼글쪼글한 얼굴들. 행복한 미소를 머금고 있는 사진 속의 그들. 그들도 지금 내 그토록 매달리는 의미라는 관점에서의 그 무엇을 느끼고 있었을까? 이젠 스크린에 비치는 모습 중 내 눈에 강하게 들어오는 것은 단역배우들의 모습이다. 주연은 이름이라도 남지, 이들 단역배우, 아니 저 수많은 사람들에 섞여 화면에 얼굴조차 내밀 기회가 없는 저 엑스트라들, 그들은? 사실 영화에서뿐 아니라 그들의 삶 또한 실제로 그렇지 않았겠는가. 하지만, 내 머리엔 또 하나의 장면이 떠오른다. 졸병시절 내무반의 모습. 그들 사이에서도 '왕'이 있었다. 하지만, 사실 큰 그림에서 본다면, 그 '왕'들 또한 '전체 화면 속'에서조차도 얼굴이 비춰질 기회를 얻지못했던 그런 존재들 아니었던가. 그 '왕'들이나 오늘 만난 '왕'들이나 또 한 때 '왕'이라는 스스로의 머릿 속에서 살아온 존재들, 다 마찬가지 아닐까? 아무리 의미를 부여하려 해도 객관적으로, 정말 냉철한 객관적 생각에, 전혀 그럴 여지가 남아있지 않은데도 계속 이어지는 삶, 그것도 삶이라 할 수 있을까? 생물학적으로 숨이 끊어지고 호적에 빨간 줄이 그어질 때 그때까지가 사는 것일까? 본능적으로 버둥거리다 떠나게 되는 그때까지가 사는 것일까? 그때까지 버티려는 본능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 거기에도 무슨 의미가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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