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이 흐른다. 흐르고 또 흐른다. 줄줄 흐른다. 한없이 흘러내린다. 그냥. 그냥. 울음. 터져 나올 것 같은 소리를 속으로 삼킨다. 울음. 속으로 삼킨다. 울음. 그냥 울어버린다. 소리, 그냥 소리쳐본다. 소리 지른다. 마지막. 마지막 오열. 이런 글자들을 두드리고 있었다. 분노와 원망 또 허무함 마비와 겹친 그 격한 감정 다스리려 먼 바다 내려다보다 쳐다보다 잠깐만이라도 눈 붙여보려 애쓰던 그때, 바로 그 시간에, 학고개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었다. 돌이켜보니 그렇다. 전화 신호음. 저쪽의 목소리. 아직 연락 못 받으셨죠 너무 놀라지 마세요로 이야기가 시작된다. 설명이 계속된다. 비탈길에서 차 엔진이 꺼졌단다. 제어가 되지 않고 그냥 어어 하는데 차가 계속 내려가더니 길 밖 절벽으로 굴렀단다. 이런 답답한 일이. 과정은 알고 싶지도 않고 그냥 결과만 이야기하면 될 텐데. 그렇다고 물어볼 수가 없다. 그러다 나무에 걸렸단다. 결론을 먼저 이야기하세요. 그래서 지금 어떤데요. 차마 그렇게 다그쳐 물을 수가 없다. 전화기를 귀에 댄 채 최악의 경우를 각오한다. 그 말을 그 단어를 차마 꺼낼 수 없어 저쪽에서 저렇게 뜸을 들이고 있는 것 아니겠는가. 상황 묘사가 끝없이 이어지는데 말을 끊을 수가 없다. 이제 그만하세요. 그래서 어떻게 되었는데요. 묻고 싶지만 말이 떨어지지 않는다. 그냥 듣고 있을 수밖에. 차에서 기어 나왔단다. 최악의 상태보다 단계가 낮아졌음을 들으며 이제야 숨을 쉴 수가 있다. 하지만 아직도 결정적 단어는 나오지 않는다. 담담한 마음으로 계속 듣고 있다. 기적이라는 단어가 나온다. 일일구도 나오고 마을사람들 이야기도 나오는데 아직도 결론은 나오질 않는다. 나무에 걸려 잠깐 멈췄던 차는 계속 굴러 계곡 아래로 떨어져 박살이 났다던가. 말을 끊을 수 없다. 아무 것도 물을 수 없다. 병원으로 가자는 것을 싫다고 하고 그냥 집으로 돌아왔단다. 그럼? 그 다음은 기억도 나지 않는다. 구조대원 이야기, 경찰 이야기, 지나가던 사람들 이야기가 계속되며 기적이라는 단어가 반복되는데, 내 귀엔 아직도 그냥 집으로 돌아왔다는 이야기만 남아있다. 마음이 다시 차가워진다. 빨리 오시라는 정중한 부탁에 매정하게 대답한다. 그럴 마음 없다고 전혀 없다고. 차갑게 끊는다. 자리에 다시 앉는다. 분노, 원망, 허무감이 다시 살아난다. 창밖을 내다본다. 베란다 쪽으로 향한다. 앞바다를 바라본다. 쓸쓸한 섬들을 내려다본다. 번호를 누른다. 지배인을 찾는다. 몇 번 신호가 가도 받질 않는다. 다시 시도. 역시 받질 않는다. 구내전화기를 집어 들고 지배인을 부탁한다. 그제야 휴대폰이 울린다. 예 저 미안한 이야기 하나. 지금 집에 급한 일이 생겨서 방 정리 할 여유도 없이 그냥 떠나야 하겠는데요. 시내를 벗어나 고속도로에 들어서는데 40분씩이나 걸린다. 여태까지 그 어느 때보다도 빨리 달린다. 빗길을 달린다. 고개를 넘고 터널을 지나고 하는 중에 눈 쌓인 산들의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날은 어두워오는데 속도감이 없다. 계속 달린다. 고속도로 출구, 이제는 집 방향. 좌회전. 고가도로 밑 커브에서 차가 미끄러진다. 옹벽을 향해 빙그르 돈다. 관성을 느낀다. 좋은 차라는 것은. 사륜구동이라는 것은. 차는 가까스로 제 자세를 다시 잡는다. 눈길. 길 양쪽으로 치워놓은 눈이 제법 수북함을 그제야 알아본다. 조심조심. 속도를 줄이고 핸들을 움켜잡는다. 어디쯤에서였을까. 길 양쪽을 살핀다. 수북이 쌓인 눈을 벗어난 바퀴자국이 있을 텐데. 올라오는 길 내내 그런 곳은 없다. 가드레일이 끊어진 곳 지날 때마다 유심히 살펴보지만 그런 곳은 보이지 않는다. 고개 정상을 지나 다시 내려가는 길, 거기에 길을 벗어난 차바퀴 자국이 보인다. 이 비탈진 계곡은 하도 가팔라 내 여기에 피는 원추리 사진 찍기도 포기하는 곳이다. 이런 곳이라면 핸들을 반대쪽으로 틀어 옹벽에 부딪치도록 했어야 하는데. 내 이런 비슷한 곳을 지날 때마다 항상 하는 생각이다. 무의식에 평소생각을 심어 만일 그런 사태가 발생하게 된다면 본능적으로 사이드 브레이크를 잡으며 옹벽에 탕탕 부딪치면서 차 속도를 줄이는 생각훈련 하는 그런 곳. 피곤하다. 어질어질하다. 말없이 짐 정리, 저녁, 어차피 요즘은 불면증 계절. 통증 호소하러 나온 기회를 잡아 묻는다. 아까 그게 몇 시정도였어. 12시 정도. 그때 내 감정이 한참 격해있던 바로 그때였었다. 이 무슨 불길한 일들인가. 여기에 와 이 사람 차 구르기 두 번, 나도 전복 직전에 차에서 탈출하기 한 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