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그날 - o

서글프다.

뚝틀이 2012. 6. 4. 12:37

모처럼 생긴 기회, 산에 올랐다. 먼 산 가기엔 기력이 달릴 것 같아 동네 산에 올랐다. 입구 좁은 산길 입구엔 차가 두 대. 오늘이 월요일, 복잡한 주말을 피해 온 사람들이겠거니 생각하며 산에 들어선다. 야생화 골짜기, 한 때 이렇게 불렸던 곳이다. 하지만, 오늘은 비록 때가 그렇기는 하지만, 꽃이 없다. 정말 없다. 국수나무에 꿀풀 그게 전부다. 아무리 눈 비비며 살펴도 오르고 올라도 그게 전부다. 갑자기 옆에서 사람 말소리가 들린다. 둘러보아도 아무도 없다. 환청인가? 조금 있다 또 들린다. 어허? 숲속에 움직임이 있다. 시커멓고 커다란 능이를 캐 앞에 놓고 어디다 전화를 걸고 있었던 것. 지난번처럼 환청이 아니라는데 안도하며 계속 오른다. 조금 더 오르니 두 사람이 더 있다. 자루. 아주 큰 자루. 산나물 가득 찬 큰 자루들. 안녕하세요, 말을 건네는데 대답할 마음이 없다. 그냥 작은 ‘소리’로 대응하고 지나쳐 오른다. 한참을 오르다, 이젠 더 올라야 의미가 없는 코스란 생각이 드는 곳까지 갔다 발길을 돌린다. 산길은 내려올 때 더 위험한 법. 습기 찬 돌에 이끼 낀 돌에 미끌미끌, 지팡이에 의지하며 조심스레 내려온다. 물론 주변을 살펴가며. 혹시나 하는 생각에. 저쪽에 흰 꽃 하나가 보인다. 노루삼인가? 다가가보니, 천만에, 아까 그 나물꾼들이 뭘 하나 캐었다가, 아니잖아 하고 던져버린 것이 나뭇가지에 걸려 거꾸로 매달려, 햇볕에 반사된 잎이 꽃처럼 보였던 것. 은근히 화가 나기 시작한다. 한참을 내려오니 푸른 풀 더미들이 출렁출렁. 부대자루 크기가 대충 사람크기다. 모양도 시원하다. 이 사람 등에서도 출렁출렁. 저 사람 등에서도 출렁출렁. 길옆에 자루를 내려놓고 다시 열심히 낫질이다. 한 사오년 전만해도 여기 이 산엔 꽃이 참 많았다. 웬만한 꽃은 성에 차지 않을 정도로. 해마다 반복되는, 봄마다 여름마다 반복되는 모습. 여기 나물 캐는 것을 목적으로 오는 관광버스들도 많고, 아예 아주머니 부대를 거느리고 오는 꾼들도 많다. 잔치마당이 따로 없다. 작년과 재작년엔 특수 기구를 가져와 뻐꾹나리를 캐가는 부부도 보았고, 또 아예 텐트 쳐놓고 작업하는 자들도 보았다. 매년 이장에게 이 산의 중요성을 이야기해도 생업에 바쁜 이 사람들에겐 야생화니 자연이니 하는 것 다 한가한 이야기일 뿐. 함백산 태백산 이야기를 들려줘도, 그저 예의상 고개를 끄덕일 뿐. 오늘 한 번, 비상라인 실험해봐? 그 꾼들의 차를 벗어나 산 밖으로 나와 전화를 건다. 여기 산나물 대량 채취자들이 있는데...., 곧 누구누구(산림감시원)을 보내겠고, 또 면사무소 담당자에게도 연락하겠단다. 어떻게 진행되나 한 번 지켜볼 생각에, 그곳 길가에 앉아 기다린다. 무소식. 그 사이 차 한 대는 떠나버리고. 또 기다린다. 역시 아무도 오지 않고 시간만 흐른다. 전화 벨소리. 누구누구세요? 여기 면사무소 누구누구인데요. 오늘하고 내일하고 담당자가 교육 들어가서요... 상황을 설명하니, 그건 시유림 관리하는 사람 소관이라.... 알았습니다. 할 수 없죠 뭐. 전화를 끊고 나니, 그저 서글픈 생각뿐. 이다음, 우리 아이들의 숲은 어떤 모양이 될까, 그런 생각은 한가한 바보들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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