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그날 - o

이틀, 특별했던 이틀

뚝틀이 2012. 5. 14. 18:39

토요일 일요일, 야생화 동호회 정모날. 가고는 싶지만 어떻게 하겠나, 집 짓는 일에 묶여있는데. 내 놀러갈 테니 이틀 쉽시다 이렇게 이야기할 수야 없지 않은가. 마음 한 구석에 아쉬움이 있던 차, 일하는 사람들이 너무 힘들어 쉬어야 하겠다고 이야기할 때, 한 이틀 어떻겠냐고 이야기할 때, 하루만이라도 정모에 참석하고 싶었는데, 단 하루만 쉬기로 하자니 내 어떻게 할 수 없지 않은가. 하루 쉰 다음 날 토요일 아침, 일찍 현장에. 보통 때 같으면 7시 10분 전에 오곤 하던 사람들이 10분이 지나도 소식이 없다. 윤회장에게 전화를 하니 너무 힘들어 하루 더 쉬고 싶단다. 옳거니, 지체 없이 박다리에게 전화를 건다. 나 오늘 갈 수 있게 되었다고. 지금 어디쯤이냐고. 이미 출발했단다. 연하와 함께 가는 중이라고. 검룡소로 향해서. 지금 출발하면 30분 시차밖에 나지 않는다. 급히 출발. 전 속력으로. 이들이 올라가버리면 혼자서는 꽃 있는 곳 찾기 힘드니 따라붙기 위해. 머릿속 생각이 급하니 감시카메라 알림도 그냥 귀를 스칠 뿐. 아차 하는 순간에 이미 통과. 할 수 없지 뭐. 한참을 달려 신동 근처를 지나면서 전화해본다. 지금 어디쯤이냐고. 바로 1-2km 앞 주유소에 있단다. 내 도대체 얼마나 과속을 한 거야. 다행이란다. 박다리는 만항재로 안내를 맡고 연하가 검룡소 안내를 맡았으니, 내 차에 연하의 동승을 부탁한단다. 행운. 우리 동회회 제일의 꽃 전문가요 예술 사진가를 모시고 갈 영광을 얻다니. 이제는 편해진 마음으로 꽃에 대한 마음가짐 사진 찍는 자세에 대한 이런저런 얘기 나누다보니 어느새 목적지. 멀리서 오는 설용화도 우리 뒤 몇 분 거리. 이 사람 역시 꽃에 대한 조예가 보통이 아니다. 동호회의 의의는 바로 이런 것. 두 대가를 따라서 아니 모시고 유럽나도냉이가 마치 유채밭처럼 노란색 향연을 펼치는 관리사무소를 지나자 대성쓴풀이 맞는다.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크다던가. 지난 몇 년 동안 내 그리도 만나고 싶어 했던 꽃이 고작 이 정도였나, 씁쓸한 마음으로 그 초라하고 연약한 꽃에 카메라를 들이댄다. 그래도 오늘 그 희귀종이라는 가칭 동강제비꽃을 만나게 된다는 기대에 발걸음을 재촉한다. 이 두 대가 양반 대화에 자꾸 쳐진다. 사실 이런 때가 뭔가 배울 기회지만, 솔직히 못 알아들을 용어도 많고, 내 차원을 훨씬 넘어서서 그렇게 집중도 되지 않는다. 꽃 종류가 생각보다 많지는 않다. 어디나 마찬가지지만 길을 벗어나야 무엇인가가 있다. 걸리고 넘어지며 계곡 아래로 내려가 길과 나란히 오르는 방법을 택한다. 그래도 홀아비꽃대에 큰구슬붕이 몇 송이뿐 별로 소득이 없다. 계곡길이 점점 험해진다. 어차피 길 양쪽은 출입금지. 다시 위로 올라온다. 검룡소는 언젠가 한 번 쯤 꼭 와보고 싶었던 곳. 계곡 저쪽 가파른 곳에는 견디다 못해 쓰러진 나무들이 보이고, 나도양지꽃을 찍고 나니 이쪽에도 큰 나무 하나 쓰러져있다. 생명의 끈질김. 마지막 숨을 거두기 전 후손을 퍼뜨리려 피운 꽃이 요란하다.  

 

 

한강의 발원지라는 검룡소. 시원한 물소리. 이 자체로도 산행은 의미가 있다. 가벼운 마음으로 내려오는 길에 그제야 올라오는 이 무리 저 무리 회원들은 만난다. 반가이 인사를 나눈다. 직업상 만나는 사람들도 이처럼 반가울까. 하긴 그들도 자연 속에서 만난다면 당연히 반갑겠지.

 

 

 

다시 주차장으로 와, 이어 만항재로 향하려다, 그제야 비로소 생각이 난다. 오늘 연하가 이곳 안내를 맡았으니, 그의 차편을 맡은 나도 그렇게 간단히 떠날 수 있는 입장이 아니다. 올라갔던 일행이 내려올 때까지 그냥 마냥 기다리고 있을 수밖에. 기다림은 언제나 오랜 법. 한참을 기다리다 다시 아까 그 대성쓴풀에 렌즈를 들이댄다. 시끄럽다. 위에서 찍고 내려온 사람들이 시끄럽다. 여기 이렇게 엎드려 있는 존재도 사람이라는 것을 전혀 인식하지 못하는 모양이다. 이들의 멘트도 대개는 유치하기 짝이 없는 과장법. 자라줘서 고맙다는 둥 대견하다는 둥. 인간이 자연보다 우월하다는 심리. 숙연함 거기에까지 생각이 미칠까. 이번에는 나도냉이 쪽으로 움직이려는데 일행 중 한 팀과 연하가 내려온다. 이들이 정했다는 태백의 명물 메뉴 그곳으로 함께. 얼떨결에 계산할 기회를 놓쳐버린다. 모닥불의 선수에 더치페이라도 주장했다가는 분위기를 망쳐버릴지도 모른다. 이어서 집결지 만항재 휴게소로. 함백산 입구를 지나가자니 길 양 옆으로 차가 즐비하다. 아는 얼굴들도 몇몇 눈에 띈다. 합류. 나도옥잠화가 한창이고 금강애기나리도 드문드문. 소백산의 꽃들이 아주 단단한 느낌이었던데 반해 여기 꽃들은 연약하기 그지없고 점박이도 희미하다. 이곳저곳에 숨어있는 제비꽃들. 아무리 배워도 점점 더 혼동이 깊어지지만 그래도 이 아이들 만날 때마다 기쁨이 먼저다. 동호회 일정으로는 오늘은 이 일대, 내일은 함백산 등반이지만, 사실 난 내일 또 집짓기 일이 있기에 오늘 혼자 등반할 생각이었지만, 여기저기 렌즈 들이대다 보니, 어느새 해가 지고 있다. 등칡 근처 당개지치 밭. 갑자기 피곤이 엄습하기 시작한다.

 

정모장소 숙소에 도착. 준비위원들 분주히 오가는 사이에 엔돌핀의 모습이 보인다. 피곤에 절은 그 모습. 등록. 즉석 명찰. 왁자지껄 모임. 반가운 사람들. 어느 새 나도 이제 아는 사람이 많아졌다. 인사 또 인사.

 

순서 시작. 사람들 모이는 곳. 이런 곳엔 꼭 이런 사람들이 있다. ‘흥분상태’ 자기의 모습이 다른 사람들 눈에 그다지 좋게 보이지 않는다는 것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들. 어쨌든 그런 것에선 눈 돌리고 ‘좋은 사람들’과 ‘좋은 이야기’ 나누는데, 엔돌핀이 전화를 대준다. 태백이다. 내일 혹시 시간을 낼 수 있으면 복주머니란 보러오지 않겠느냐고. 이런. 이런 좋은 기회를. 내일은 집짓기 때문에.... 저녁 식사 후 집으로. 피곤하다. 운전하다 졸음을 느껴보기는 오랜만이다. 때마침 유사장 전화. 양해 하나 구하고 싶다고. 내일 급히 마무리해야하는 일이 있는데, 윤회장과 영태씨를 자기 쪽에서 쓰면 안 되겠냐고. 이 양반들 하도 힘들어 집에서 쉬고 있는 중인데... 또 그쪽에 힘든 일 겪으면 우리 일에 지장이 생기는데...... 그런 걱정일랑 말란다. 작업 내용은 어렵지 않다고 그저 하루만 부탁이란다. 그렇게 하자고 전화를 끊으면서 속으로 쾌재를 부른다. 내일 다시 태백으로.

 

아침 일어나자마자 전화를 걸고 ‘그곳’으로 향한다. 길도 험하다. 차 비껴갈 수도 없는 좁은 농로를 가고 또 가고. 길 옆 경사가 보통이 아니다. 아찔아찔. 참 신기하다. 도대체 이렇게 깊고 깊은 곳에 무슨 꽃이 피어있는지 어떻게들 아는 것인지. 재작년에는 먼 길 지리산 깊은 곳에 가서야 만났고, 작년에는 금대봉 쪽에서 허탕을 치고 만항재 철조망 밖에서 렌즈를 들이대는 것으로 겨우 만족해야만 했던 터라, 이렇게 자연의 품에 안겨있는 꽃을 보는 느낌 그것은 기쁨이다. 기쁨 그 자체일 수밖에 없다. 친절이란 것. 이 양반 식사까지 미리 주문해놓았다. 일하는 사람들이라면 오전 참 먹을 그 정도의 시간에 푸짐한 점심상. 식사 유일사 쪽으로 가볼까 생각도 해보았지만, 엔돌핀 쪽으로 합류하기로. 함백산 입구에 도착하니 일부는 벌써 내려오고 다른 팀들도 한 시간 정도 후엔 다 내려와 점심 장소로 향한단다. 같이 하지 않겠냐고. 아니면 빨간꽃 피우는 애기괭이풀 보러갔다 자기들 식사 후 만나겠냐고. 당연히 후자 쪽. 기생풀 있는 곳 근처라는 설명을 듣고 올라가고 올라가다보지만, 어느새 함백산 정상 밑, 찾을 수 없다. 안 되겠다싶어 전화 걸어보니 내 엉뚱한 코스로 올라 온 것. 하여튼 내 길눈이라는 것은.... 길을 빙 돌아 내려오다 얼레지에 눈이 팔린다. 이곳 얼레지는 낮은 곳 쪽 식구들과는 분위기가 전혀 다르다. 태백의 기풍이 서려있다고 할까. 결국 빨간 애기괭이밥은 놓치고 내려오니 식사를 마친 엔돌핀이 입구까지 마중 와있다. 겨우 숨 돌리는가 싶었는데, 문자 메시지. 만나서 반가웠단다. 이제 돌아가는 길이라고. 그럴 수야 없지. 부랴부랴 서둘러 차로 향한다. 어디냐고. 신동 근처란다. 기다려달라고. 그냥 보낼 수야 없다고. 어제 점심 신세진 것 갚으려 이런저런 옵션을 제안해보지만 모닥불 일행 막무가내다. 그냥 갈 길을 서둘겠단다. 간단한 음료수로 대신할 수밖에. 즐거운 이틀이었다. 아무 때나 마음먹으면 카메라 들고 나설 수 있었던 그런 때가 아니라 더욱.

 

 

 

 

'그날그날 - o' 카테고리의 다른 글

서글프다.  (0) 2012.06.04
Congratulations!  (0) 2012.05.23
기둥, 인내, 가장  (0) 2012.04.30
맥빠진 하루  (0) 2012.04.30
박다리, 뚝틀이  (0) 2012.04.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