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태골에서의 실망을 만회하려는 마음에 차를 타고 떠난다. 이곳 온지 6년이 넘도록 아직 오르지 못한 비봉산, 그곳이나 한 번 가보려고. 우선 유사장 현장을 들린다. 이곳 한 번 다녀올 때마다 길 옆 나무들에 긁혀 차는 만신창이. 처음 차가 긁혔을 때는 아까운 마음도 들었지만, 이젠 소모품 개념이다. 긁히면 긁히지 뭐. 그곳에서 비봉산 오르는 코스는 처음에는 두 발로 중간부터는 세 발로 나중에는 네 발로 올라야 한단다. 모노레일을 타고 가는 것이 어떻겠냐고. 그곳 모노레일이 일반인에게도 개방되어 있다는 사실을 몰랐었다. 하지만, 단숨에 달려간 그곳에서 나를 가로 막고 있는 것은 매주 월요일은 휴무라 쓰인 나무 조각. 쇠사슬 앞에서 할 수 없이 발길을 돌린다. 이제 평소에 봐 둔 꽃밭 그쪽으로. 무더운 날 오늘 묘한 욕심이 앞선다. 임도, 그곳 임도엔 차로 들어갈 수 있을 것도 같던데. 한 번 가보지 뭐. 그리고 들어선다. 보기와는 다르다. 며칠 전 온 비 때문에 질어진 때문일까. 사륜구동 모드로 놨는데도 진흙 길에서 차가 계속 옆으로 미끄러진다. 그냥 미끄러지면.... 옆을 내려다보기도 겁난다. 어쨌든 위험한 고비를 벗어나 내 원하는 곳으로. 의외의 소득. 털중나리 몇 송이가 눈에 띈다. 아직 철이 아닌데... 금년은 야생화 피는 순서가 뒤죽박죽. 봄이 없었다. 봄이 있었는지 모르지만, 적어도 나에겐 이른 봄에 몇 가지 찍은 후 집 짓기에 매달려, 봄을 느낄 겨를이 없었다. 덥다. 후텁지근한 날씨. 그래서 더 게을러지는지도 모르고. 다시 밖으로. 아까 들어갈 때는 몰랐는데, 차가 더 심하게 옆으로 밀리곤 한다. 빨리 벗어나려는 마음에 속도를 내니 더 옆으로 기울어진다. 그래도 속도를. 갑자기 차가 크게 흔들리며 옆으로 튕겼지만, 어쨌든 위험지역은 벗어났다. 아까 들어갈 때는 그래도 마음에 여유가 있어 큰 돌을 피해갔지만, 나올 때는 그 큰 돌이 눈에 보이지도 않아 그냥 타고 넘은 것이다. 어쨌든 별 특이한 것 느끼지 못하고, 또 다른 곳으로 향한다. 내 아는 다른 꽃밭으로. 여기서도 강행군. 가파른 비탈길을 그냥 오른다. 어지러울 정도로 가파른 긴 풀로 덮인 '길'을. 전에 봐뒀던 아늑한 곳에 차를 세워놓고 오른다. 반가운 꽃이 별로 없다. 그저 색 바랜 구슬붕이뿐. 다른 쪽엔 뭐가 없을까 지름길로 내려온다. 약간의 각도가 주어졌을 뿐인데, 방향 감각이 없어진다. 빤히 아는 산이라 생각했는데, 길이 없어지니 험난하기 그지없다. 고립무원의 상태. 긁히고 뜯기며 더 내려가지만 아예 지나가기도 힘든 나무와 풀 세계 숲속이다. 이런 난감함. 거의 탈진 상태로 자동차 소리 나는 곳을 향해 길로 내려서니 참 먼 곳으로 벗어났다. 카오스 원리. 내려오기 시작할 때의 작은 판단 차이가 최종적으로 만들어내는 결과. 갈증과 겹쳐진 더위, 사람 참 괴롭게 만든다. 다시 원래 내 들어간 입구로 걸어내려와 차 세워놓은 곳으로 다시 오른다. 한 모금. 살 것 같다. 카메라 배낭을 트렁크 대신 운전석 옆에 놓고 이제 내려가려 문을 닫는데, 닫히지 않는다. 걸리는 것이 없는데 왜지? 다시 열었다 쾅 닫아본다. 유쾌하지 못한 소리가 나며 빨간 무엇인가가 땅바닥으로 떨어진다. 닫혀지는 문 사이로 찌그러진 속이 보인다. 이건 무슨 일? 다시 문을 열고 찬찬히 들여다보니, 옆 발판에 걸려 문이 찌그러져 걸리는 것이다. 이런 낭패. 어디서 이렇게 되었지? 아까 유사장 현장에 갔다 나오는 길에서? 그럴 수도 있다. 차 돌릴 곳 없이 후진하는 동안 나무에 걸렸을 때 무자비하게 틀어대기 몇 번이었으니. 어쨌거나 정비소로 향한다. 내비게이션을 찍으니 25km. 할 수 없지 어쩌겠나. 그곳에 도착해 다시 보니 차 발판 밑이 험하게 일그러져 있고, 그 발판이 위로 솟는 바람에 문이 걸렸고, 그것을 무리하게 닫으니 문이 찌그러졌던 것. 부품 재고가 없고, 주문하면 한 40만 원 정도가 나올 것이라는 설명. 망치를 빌려 달라 해 대충 두드려 펴고, 일회용 핀들 부러진 곳에 다른 곳 것들 갖다 맞추니 적어도 외양으로는 멀쩡하다. 사람의 마음이란 것. 위험했던 상황을 벗어난 안도의 마음보다는 왜 그런 곳에 차를 끌고 들어갔던지 거기에 대한 자책이 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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