멍하다. 귀가 멍하다. 띵하다. 머리가 띵하다. 오늘 두 군데를 강행군한 운전이 너무 무리였나? 삶이란 무엇인가를 깊이깊이 생각게 했던 두 곳. 힘들었다. 운전할 수 없을 정도로 퍼붓던 비. 현관에 앉아 앞산을 바라보며 뚝디를 다독인다. 이 녀석보다 더 행복한 개가 있을까? ‘완벽한 복지’에 더할 수 없는 주인의 사랑. 눈치 보며 주인의 생각을 읽어내는 수준으로 말하자면 거의 사람 수준이다. ‘완벽한 복지’에 ‘더할 수 없는 사랑’을 누리는 사람이 있다면 그것은 ‘행복의 충분조건’일까? 예를 들어 로마시대의 그리스 노예, 아니 지금 이 땅에서 ‘누리고 있는’ 사람들이라면? 자유의지? 쓸데없는 생각 말고 그냥 비나 즐기시죠, 뚝디가 꼬리를 살랑살랑 흔든다. 얼얼하다. 뭣 때문에 이리 어지럽지? 혹 바람소리 그 때문? 소나무들 조용히 서있는 것 보니 그렇지는 않고. 계곡, 저 밑 계곡을 때리는 물소리. 당연한 것도 이렇게 생각하고 또 생각한 후에야 아 그렇지 하고 느끼게 된지는 제법 오래되었다. 사라진 사고의 순발력. 돌이 구르고 바위가 자리를 옮기는 소리다. 몇 해 전 내 눈으로 똑바로 봤다. 비 한 번 크게 온 후 ‘지형’이 변했던 것을. 저 요란한 소리로 미루어 짐작하건데 이번에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백 몇 년 만의 가뭄이라 걱정하던 때가 언젠데. 자연의 신비 중 제일을 꼽으라면 당연히 비 아닐까. 그 당기고 늦춤의 오묘함. 하지만 뉴스의 비는 서운함의 대명사. 단비는 뉴스거리가 되기 힘들다. 사람들 사이 역시 마찬가지 아닐까. 고마움과 서운함, 그 기억의 강도와 유효기간. 몸까지 진동하는 느낌이 꼭 비행기에 앉아있는 기분이다. 기내소음? 참, 그렇지. 미현이 선물이 있지. 방으로 돌아와 노이즈 캔슬링 헤드폰을 써본다. 조용해진다. 신통하게 다른 세계다. 야생화 사이트를 둘러본다. 백두산 다녀온 사람들의 왁자지껄 티내기. 하지만 가만히 들여다보면 자기들끼리의 무용담일 뿐, 다른 사람들은 별무반응이다. 내 조금 일찍 야생화에도 관심을 가졌었더라면. 다른 취미생활의 몇 분의 일만이라도 이쪽으로 돌렸더라면. 그랬다면 물론 그때 백두산 갔을 때도 천지만 보고 오지는 않았겠지. 여행. 기찻길 옆 피난민촌에서 자랄 때 내 꿈은 여행이었고, 그때부터 내 옆엔 항상 지도책이 있었다. 입시지옥을 벗어나자마자 시작했던 스페인어와 불어 또 일본어와 독일어. 여행의 첫발은 스위스에어에서의 연수였고, 그 후 좀 과장해서 말하자면 미국인보다 미국을 유럽인 보다 유럽을 구석구석 누볐다. 단체나 여행사 따라다닌 그런 적은 없었다. 천천히 내 페이스에 맞춰서 엿보고 또 가보고. 일본을 드나들던 어느 날 문뜩 든 생각. 내 언제까지 이렇게 취미여행을 할 수 있을까? 노후 준비. 나중에도 지속될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는 바둑만이 유일한 후보처럼 보였다. 아니, 지금 내 한가하게 취미걱정 따위나 하고 있다니. 직장에 있으면서도 이렇게 어려운데, 나중에 언제 서울에 남아있을 경제력을 비축할 수는 있을까? 궁리궁리 끝에 내린 결론. 두만강 바로 위 중국 땅에서 노후 보내기. 중국어 준비. 어학이란, 특히 中文學이란, 文史哲의 동의어. 시와 역사와 고전에 곁들여 다시 살아난 방랑벽이 이번에는 러시아와 몽골 또 남미 오지여행으로 이어지고. 물론 언제나처럼 고독 여행. 멈출 듯 보이던 비가 다시 세차게 몰아치기 시작한다. 집사람이 화제에 올렸던 집 앞 스님. 연못과 조경 그 방대한 작업을 세상을 뜨기 바로 얼마 전까지도 혼자 해내던 그 스님. 마을사람들에 의한 수모와 수난. 다시, 또, 산다는 것 그 의미는? 나라는 인간은? 평온과는 거리가 먼 집중호우 형. 심한 열등감 그 시절의 클래식 사랑. 졸병시절 VUNC 들으며 ‘채보’해 놓았던 그 두꺼운 노트. 취미에도 투자 개념이 있다면 시간이 당연 그 척도일 테고, 그렇다면 음악과 바둑 이 둘이 난형난제, 그 다음이 어학과 여행. 골프니 뭐니 하는 것들은 명함도 내밀지 못할 정도. 그런데 이제는? 그런 것 다 지나가고 꽃과 별과 책 그뿐. 그렇다면 다 잘못된 헛수고? 천만에, 천만에. 음악도 바둑도 다 패기의 젊은 시절 외골수로 여유의 가뭄을 달래주던 집중호우였고, 어학과 여행 또한 생각의 지평을 넓혀주고 삶이란 숲을 살찌우게 하는 집중호우였다. 이제 그 효용성 사라졌다고 의미조차 흔적도 없이 사라진 것 아니다. 단지 지금은 환상교향곡 5악장의 종소리, 라보엠 미미의 마지막 노래가 배경음악으로 깔려있는 무대장면에 들어섰을 뿐이다. 레퀴엠이 울려 퍼지기 전에 어울리는 아이템, 그것이 바로 꽃과 책과 별 아니겠는가.